관련 포스팅
2017/02/12 - [여행/뉴잉글랜드] - 맥주 순례자들의 성지. 힐 팜스테드 양조장 (Hill Farmstead Brewery)
요새 한국에서 수입 맥주가 인기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판매되던 국산 맥주는 맛없는 맥주라고 여겨지고, 다양하고 개성이 넘치는 수입 맥주가 맛있는 맥주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근데 이런 주장은 한국 맥주에게 좀 억울하게 들릴 수도 있을거 같다. 한국 맥주가 개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딱히 특징이라고 할만한 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향이 부족한 것이 한국 맥주의 잘못은 아니다.
한국 맥주가 맛이 없는 이유는, 한국 맥주 회사의 잘못이 아니라, 19세기에 미국에서 유행했던 금주 운동 (temperance movement) 때문이다.
맥주에서 개성적인 향을 담당하는 재료는 맥아와 홉의 역할이다. 맥아와 홉의 비율을 조절하여 맥주의 기본 맛과 향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맥아를 가공하는 방식과 맥주를 발효하는 방식에 따라서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다. 물론 밀, 고수, 오렌지껍질등 재료를 추가해서 또 다른 맛과 향을 만들 수도 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우리가 마셔왔던 국산 맥주는 대부분 미국식 부산물 라거 (American Adjunct Lager) 라는 종류의 맥주에 속한다. 미국식 부산물 라거는 쌀 또는 옥수수등의 부산물을 첨가하여 제조한 맥주인데, 이 맥주의 특징이 바로, 그다지 맛과 향이 강하지 않다는 점이다. 탄산은 강하지만 맥아와 홉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맥주의 특징적인 맛과 향이 대폭 줄어들어서, 밍밍한 보리차에 탄산을 넣은것 같은 느낌이 바로 미국식 부산물 라거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따라서, 이러한 미국식 부산물 라거의 특징에 맞추어서 생산되던 국산 맥주가 유럽의 개성 넘치는 맥주에 비해서 단조롭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일 수 밖에 없다. 원래 미국식 부산물 라거가 그런 맛이니까.
(참고로, 미국식 부산물 라거는 페일 라거의 한 변형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미국식 부산물 라거는 원래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맥주를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미국 맥주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또한 국제적으로도 가장 거대한 맥주 회사라고 볼수 있는 버드와이저, 밀러, 쿠어스가 바로 미국식 부산물 라거를 주로 만드는 회사들이다. 이 세가지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그 이외의 수많은 대형 맥주 회사들 또한 아무런 개성없는 탄산수같은 미국식 부산물 라거를 생산한다.
물론 미국은 최근에 IPA 를 중심으로 하는 크래프트 비어 (소규모 양조장)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맥주 시장의 거의 90% 수준을 버드와이저, 밀러, 쿠어스같은 미국식 부산물 맥주가 점유하고 있다. 사실 미국식 부산물 맥주의 인기는 미국에 국한된것은 아니기 때문에 미국 이외에 국가에서도 미국식 부산물 라거를 마시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한국이 바로 대표적인 경우인데, 해방 이후 미국 문화권에 편입된 현대 한국의 역사를 생각해봤을때, 한국에서 미국식 부산물 라거가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럼, 왜 미국인들은 미국식 부산물 라거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질문을 하자면, 미국인들은 왜 맛과 향이 거의 없고,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개성없는 맥주를 좋아하는 것일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절반정도만 맞는 얘기가 주로 검색된다. 공장식 대량 생산의 국가 미국 답게 맥주를 대량 생산하여 가격을 낮추는 문화가 발달하였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한 대신 개성이 부족한 공장식 대량 생산 맥주가 주로 팔린다는 것이다. 이 설명이 절반만 맞는 이유는, 왜 하필이면 대량 생산 공장에서 맛과 향이 별로 없는 미국식 부산물 라거를 선택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1세기 현재 미국은 대형 맥주회사들이 치열한 시장 점유 경쟁을 벌이는 동시에, 훌륭한 크래프트 비어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맥주의 천국이다. 하지만 북미 대륙에서 원래부터 맥주가 유행을 하지는 않았었다. 유럽인이 북미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한 이후로 북미 대륙에서 유행하던 술은 맥주가 아니라, 럼 (rum) 과 위스키 (whiskey) 였다. 북남미 대륙 전체에 넘쳐나는 사탕수수와 옥수수 덕분에, 사탕수수로 만든 럼과 옥수수로 만든 버번 위스키가 미국을 대표하는 술이었고, 이 와중에 독일 이민인들을 중심으로 독일식 맥주가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이었다.
식민지 건설 당시부터 종교적인 금욕주의가 대세를 이루던 미국에서는, 19세기에 금주 운동 (temperance movement) 이라는 것이 전국적으로 유행을 하기 시작한다. 술은 멀리해야하는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럼과 위스키의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맥주는 여전히 잘 팔렸는데, 알콜 도수가 적은 맥주는 상대적으로 덜 나쁜 것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금주 운동의 영향으로 점점 주류의 소비가 줄어들더니, 20세기에 들어와서 금주 운동은 금주령 (Prohibition) 으로 발전하게 된다. 법적으로 술을 완전히 금지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성인이 된 미국 젊은 세대들은 술맛이 뭔지 전혀 모르는 어른 세대가 되었다. 그러다가 1933년 금주령은 폐지가 되었고, 미국에 다시 술이 허용이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한번에 모든 술이 완전 허용이 된것은 아니었다. 최초로 허용이 된 술은 "허가 받은 양조장에서 제조한 도수 4% 이하의 술" 만 마실 수 있었다. 4% 이하의 도수로 제조가 가능한 술은 사실 거의 없었다. 술중에 도수가 가장 낮은 술인 맥주 조차도 최소 5-6% 또는 그 이상의 도수를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주령이 해지될 무렵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술은 기존의 맥주에 물을 섞어서 만든 "밍밍한 맛의 맥주 (bland beer)"가 전부였다. 또한 "허가받은 양조장에서" 만든 술만 마실 수 있었으므로, 유럽에서처럼 각각의 가정에서 다양한 실험을 거쳐서 만들어진 개성만점의 맥주 또한 미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다.
덕분에 금주령 (prohibition) 동안 술맛을 전혀 모른 채로 어른이 된 미국의 젊은이들이 최초로 마신 술은 바로 "대형 양조장에서 개성없이 만들어진 밍밍한 맛의 물탄 맥주" 였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모든 종류의 술의 제조가 허용이 되었다. 따라서 맥주의 도수도 높아지고 다양한 맛으로 발전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 2차대전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미국이지만, 진주만 폭격이후 미국도 참전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투입되었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생산력을 갖춘 국가였다. 미국이 참전한 전쟁터에는 막대한 물량을 쏟아부었으며, 덕분에 미국 군인의 보급품에는 공짜 맥주가 포함되기도 하였다. 이 공짜 맥주는 바로 4%의 알콜 도수를 가진 밍밍한 맛의 미국식 맥주였다.
금주령이 끝나고 처음 먹어봤던 낮은 도수의 개성없는 밍밍한 미국 맥주맛을 전쟁터에서도 계속 즐겼던 미국 젊은이들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기성세대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잘 알듯이, 미각은 가장 보수적인 감각이다.
인류의 문화를 대표하는 가장 큰 세가지 카테코리는 의식주이다. 20세기에 급격한 변화를 거친 한민족의 경우 의식주 문화는 어떤가? 입고 다니는 옷은 100% 서양의 옷을 입는다고 해도 될거 같다. 거주 문화의 경우 온돌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서양 대도시의 거주문화와 비슷하다. 하지만, 먹는 문화는 여전히 한국의 것이다. 젊은 한국세대는 피자와 햄버거를 자주먹는 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한국인이 숙취로 고생하는 아침에 가는 곳은 콩나물 해장국 식당이다. 정말로 피자와 햄버거가 주식은 미국인들은 숙취로 속이 뒤집어지면 다음날 아침 해장하러 피자와 햄버거를 먹으러 간다. 미각은 매우 보수적인 감각이다.
아무리 급격하게 문명이 변화해도 미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여러번 강조하지만, 미각은 가장 보수적인 문화유산이다.
유럽은 예나 지금이나 향이 강한 맥주를 좋아한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런 맥주를 처음으로 마시고 계속 익숙하게 마시면서 자라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금주령으로 술맛을 모른채로 자란 20세기 초 미국의 젊은이들이 처음 마신 맥주는 대형 양조장에서 만든 도수가 낮은 밍밍한 맛의 맥주였다. 그리고 그 젊은이 들이 기성세대가 된 이후에도 미각의 보수성으로 인하여 이런 미국식 맥주가 미국 사회에서는 더 좋은 맥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세대들은 바로 이런 미국식 맥주를 마시고 자라게 되었고, 오늘날의 미국식 부산물 맥주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미군정을 통해서 미국 문화로 빠르게 편입하고 처음 맥주맛을 배운 한반도 남쪽의 사람들에게도 이런 미국식 맥주가 좋은 맥주라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한국 맥주 광고에 흔히 등장하는 시원하고 목넘김이 좋은 맥주라는 뜻은, 알콜이 적게 들어가서 바디감이 적고 향이 적다는 의미이다.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수입 맥주 또는 크래프트 비어 문화는 무척 반가운 얘기이다. 맥주를 사랑하는 나도 그런 다양한 맥주 종류의 확대가 무척 반갑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맥주가 맛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유럽인의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태도에 불과하다. 김치는 마늘냄새가 심해서 백인 앞에서 먹기에 창피하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왜 우리가 유럽인의 시선으로 우리를 평가하려고 하는가?
<관련 포스팅>
2017/02/12 - [여행/뉴잉글랜드] - 맥주 순례자들의 성지. 힐 팜스테드 양조장 (Hill Farmstead Brewery)
'미국&영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인을 영어로? friends vs. acquaintances (0) | 2018.12.15 |
---|---|
숫자 7 쓰는 법 (0) | 2018.07.03 |
미국 적응하기 - 회사 생활 (0) | 2018.03.08 |
이 모든 시작은 일본. (0) | 2018.03.02 |
once in a blue moon (0) | 2018.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