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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알토 일상

좁고 낡고 시끄러운 우리집의 좋은 점

by 마미베이 2020. 9. 12.

 

 

 

 

팔로알토는 이 동네에 산다는 것만으로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유명한 곳입니다.

스탠포드 대학이 '스탠포드'라는 타운에 있는데, 팔로알토가 스탠포드 바로 옆에 있어서 스탠포드 대학이 팔로 알토에 있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다네요. 학교 발런티어로 노벨상 받은 사람들이 와서 애들 수학을 가르쳐주기도 한다는 지식 충만한 곳입니다.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도 살았던 곳, 수많은 실리콘 밸리의 성공한 기업들이 시작한 곳, 오랫동안 부유한 동네에, 베이 지역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가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팔로 알토는, 큰 나무(tall stick)라는 뜻의 스페인어입니다. 지명이 없던 시절 즈음이었을까요, 이 곳의 커다란 레드우드 나무가 하나 있었죠. 사람들은 그 나무를 그냥 '큰 나무'라고 불렀나봅니다. 왜 옛날에는 거기 그 큰 나무 앞에서 만나자, 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큰 나무라는 뜻의 스페인어인 'El Palo Alto'에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합니다.

 

El Palo Alto park에 가보면 바로 그 팔로 알토가 있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정말 큰 나무였나봅니다.(공원이라기에는 그냥 길에 나무 뿐인 공원임)

지금은 저 큰 나무(El Palo Alto)가 주변 나무들에 비해서 그닥 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나무 왼쪽으로 샌프란시스코를 왕복하는 칼트레인이 다니는 기찻길이 있는데 기차의 매연때문에 나무 위쪽이 다 말라서 죽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다시 관리를 해서 잘 살렸지만 윗쪽까지는 못살렸나봅니다. 지금은 그리 크지 않게, 주변 나무들과 비슷한 높이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물론 기차의 매연도 없어지기도 했고, 또 나무에 물주는 장치며 온갖 보호장비를 해놔서 특별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El Palo Alto Park, 117 Palo Alto Ave, Palo Alto, CA 94301>

페이스북에 Our town of Palo Alto라는 그룹에 가입을 했더니

자부심에 벅차서 옛날부터 살면서 겪은 팔로 알토 이야기를 알고 있는 걸 자랑하는

팔로알토 부심 쩌는 꼰대(?)들이 글을 올리는 걸 보게 됩니다.

옛 이야기 자꾸 하면 좀 꼰대같긴 하잖아요?

옛날에는 여기가 어땠다, 라는 식으로 잘난 척 하는 거 말입니다.

나이 들어가니 왜 그러는지 이해는 되지만 그렇게 안되려고 경계는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누가 스티브 잡스의 집을 올렸습니다.

아직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옛날에 잡스가 이 집을 30억에 샀다는데,

지금은 이 동네에서 쓰러져가는 쬐끄만 싱글홈도 30억에 시작합니다.

 

매일 산책을 하며 다니는 작은 동네 공원으로 가는 길에, 집 구경을 하다가 오픈하우스를 지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궁금해서 들어가봤더니 백년 정도 된 집을 20억 정도에 사서 기둥까지 다 새로 고쳐지은 다음 50억 넘는 가격에 내놓은 집이었습니다.  한달에 세금(보유세)만 5000불(500만원)씩 내야하는 집이죠. 방 5개에 작지 않지만 아주 크지도 않은 3천 스퀘어핏(90평) 정도의 집이었고, 새로 지은만큼 고급스런 느낌의 인테리어에, (쓸데없이) 집 바깥쪽 거라지 건물 한쪽에 요가룸까지 만들어둔 집이었는데, 뭔가 어색한게 영 맘에 들지는 않더라구요.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뒷마당에 딱 붙어서 기찻길이 있어서 시끄러운 기차가 수시로 지나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넵, 이런 집이 며칠 전에 조금 깍아서 47억에 팔렸습니다. (베이 지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곳 중 하나가 맞네요)

 

다시 스티브 잡스 집 얘기로 돌아와서,

이 집은 매년 할로윈마다 멋지게 장식을 해서 사람들이 구경을 많이 간다고 하네요.

댓글에는 이 집에 들어가봤다는 사람, 친구가 그 집에 들어가봤다는 사람, 그 집에서 일했다는 사람, 스티브 잡스가 이 집을 살때 도와줬다는 리얼터 등이 자랑을 해대다가,

마지막에는 스티브 잡스 이전에 그 집에서 살았던(자기 부모가 그 집을 팔았다는) 사람까지 나타났습니다.

이 부심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네요.

 

우리가 이 동네를 선택한 이유는,

작년에 막 이사를 왔을때, 회사에서 팔로알토 북쪽 레드우드시티에 임시 숙소 아파트를 구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스탠포드 대학의 가장 경치가 좋은 Oval이라고 불리는 잔디에 가서 조깅을 하고 로댕 조각이 있는 야외 공원도 보고, 미술관도 가고 교회도 구경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스탠포드 대학 맞은편의 팔로 알토인 스탠포드 쇼핑 센터나 유니버서티 애비뉴, 캘리포니아 애비뉴, 타운 앤 컨트리 몰 등을 구경했는데,

동네 느낌이 너무 좋더라구요.

게다가 학군까지 좋다고 해서 이사를 왔는데,

워낙 비싼 동네다보니 우리가 구한 것은 아파트입니다.

그래서 1년 사이에 싱글홈에서 타운홈으로 짐을 줄이고, 다시 아파트로 짐을 줄였습니다.

별 생각 없이 짐을 다 가지고 왔다가, 발디딜 틈이 없음을 발견하고 소파부터 해서 큰 가구들을 없앴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을 실행해보려 했으나, 수납할 곳이 없어서 수납가구가 아닌 기존 가구들을 버리고 아파트의 좁은 공간에 맞는 가구로 샥~ 바꿨지요.

미국에서 아파트는 개인 소유가 아니라 회사가 주인이어서, 뭐가 고장나거나 하면

손 하나 까딱할 필요 없이 메인터넌스를 다 해줍니다.

얼마나 편한지!

 

투베드룸 유닛을 구했는데, 1980년대에 지은 건물이고, 들어올때 카펫과 블라인드, 냉장고를 새것으로 교체해주었습니다.

세탁기,건조기는 거의 박물관에 가져가야할만큼 오래된 것이었는데, 입주하고 나서 모터 냄새가 너무 심해서 못쓰겠다고 몇번 얘기했더니 새 것으로, 그것도 큰 것으로 교체해주었습니다. 기존 세탁실에 새 세탁기를 겨우 끼워넣고 세탁실 밖으로 삐져나온 세탁기/건조기때문에세탁실 문짝은 떼어버려야했지만, 기존 세탁기보다 한 다섯배는 통이 커서(새 것이 요즘 보통 크기) 이불 빨래도 가능해졌습니다.

 

부엌 캐비넷은 처음 건물 지을때 그대로여서인지

문을 열때마다 나무 조각이 으스스 떨어집니다.

부엌 캐비넷을 레노베이션한 유닛은 지금 유닛보다 한달에 500불이 더 비싸더군요.

그래서 오래되고 으스러지는 캐비넷 밑에 깔 수 있는 깔개를 사다가 전체를 다 깔고, 오래된 나무에는 기름칠을 좀 해주었습니다.

이런 오래된 것은 그냥 요령껏 쓰면 되고, 좁은 건 우리가 세 식구밖에 안되기 때문에 가구를 좀 더 버리면 되고 해결이 되는데,

소리에 예민한 제게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우리 유닛이 큰길가라는 점 입니다.

 

 

차.소.리.

 

차가 굴러가는 저음의 진동 소리는 어떤 것으로도 커버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포터블 에어컨을 다느라 창문을 연결된 호스를 통해서 차소리는 더 크게 들렸고,

게다가 거실의 천장을 동그랗게 디자인을 해서 무슨 공연장도 아니고, 소리가 더 울렸습니다.

 

부엌의 냄새 빼는 후드를 켜거나 포터블 에어컨을 켜면 차소리가 좀 묻히긴 합니다만,

차소리는 일정하게 나는게 아니라 차가 지나갈때마다 나고, 또 트럭, 오토바이, 승용차 등 차의 종류에 따라 소리 크기가 달라서

그걸 하루 종일 듣는 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24시간 내내 온 가족이 집에서 생활하는 코로나 2020 시대에

다들 집을 넓히거나 마당을 찾아 서버브로 떠나는 시점에 우리는 도시의 좁고 시끄러운 아파트로 들어온겁니다.

 

다행인지 우리 가족 중 저만 이 소음이 힘들더라구요.

하루 종일 시끄러운 공장으로 출근한 피곤함이었습니다.

다른 조용한 유닛으로 옮겨야하나 고민도 하고...

그러다가 대안을 찾았는데 바로 노이즈캔슬링 이어폰!!

 

이걸 끼고 있으면 차소리가 딱 안들립니다.

이걸 생각해내고 어찌나 행복해지던지.

심지어는 더운 날 틀어놓는 포터블 에어컨 소리도 안들리니, 집중도 잘 되고 좀 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종일 성능 좋은 소니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한 두달 지나니, 이어폰을 끼지 않아도 슬슬 차소리가 화이트 노이즈로 여겨지고 신경이 안쓰이기 시작하네요.

 

이어폰을 끼고 좀 살만해지니까, 공원 근처의 더 큰 소리와 진동으로 지나다니는 기차를 감당해야 하는 공원 옆 기찻길 앞 47억짜리 집보다 우리집이 훨씬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차소리가 시끄럽긴 하지만, 이제는 그닥 신경쓰지 않습니다.

적응이 되긴 된 거죠. 

 

일단 이렇게 극복을 좀 하고 나니, 그제야, 여기가 아파트인데 층간 소음이 덜하다는 걸 깨달았는데,

간간히 위층 발소리가 들리지만 이게 차소리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쏘고 부수고 터트리는 어벤저스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남편이 영화를 볼때,

데쓰메탈인지 뭔지 시끄러운 음악을 들을때도

소음 걱정이 덜합니다.

우리 라인은 다 큰 길가라 어차피 차소리때문에 시끄러워서 다른 소리가 묻히거든요.

 

참, 늘 이렇게 고통은 상대적인 거라서,

차소리가 아니었으면 위층에서 발소리 난다고 투덜거렸을텐데,

지나가는 차를 욕할수도 없고 그러니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좋은 점이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캘리포니아는 산불로 오렌지빛 하늘이 되었습니다.

거실에서 바라본 바깥 색, 대낮입니다.

진짜 대낮에 이렇게 붉은 선글라스를 끼고 보는 세상처럼 오렌지색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핏빛이라고 표현하던데....금방이라도 외계인이 침략할 것 같고, 좀비가 돌아다닐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아래는 샌프란시스코 사진입니다. (Kron4 지역신문 사진 www.kron4.com)

산불의 시작은 며칠 전 쳤던 번개였고, 또 아기 성별 맞추기 놀이를 하다 나기도 했다네요.

11월 전에는 비가 오지 않는 사막 지역인 캘리포니아는 역대 세 번째로 큰 산불이라는데, 기록을 갈아치울 듯 캘리포니아 서부 전체와 북쪽의 오레곤 주, 캐나다 밴쿠버까지 북아메리카의 서부 전체에서 불이 나고 있습니다. 그 연기가 상층으로 이어져서 내려와서 오렌지빛 하늘과 재가 내리고 심각하게 연기에 갇혀있습니다.

27일째, 공기가 안좋은 상태 지속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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