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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리뷰

피아노 "천재"와 결혼한 마누라의 생각

by 마미베이 2016. 4. 15.

 


우리집 피아노 레슨 이야기에 이어서,  ==> 피아노 레슨

제 남편이 10년 전 레슨 2주 받은 실력으로 베토벤 월광을 친 포스팅 보셨는지요? 


아니 무슨 사람이 피아노 레슨도 안받고, 그냥 베토벤 월광을 친답니까?

제가 피아노 "천재"와 함께 살고 있었던 걸까요?

어쨌든 공부 안하고 서울대 갔다는 재수 없는 얘기랑 차원이 같아서

같이 사는 마누라로서 좀 드는 생각을 끄적여봅니다.


제게 있어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돈내고 학원을 간다는 의미입니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음악, 미술 등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위해 돈을 내고 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만 생각하지요.

예전에 회사 다닐때, 영어공부를 해야겠어서 학원비 10만원을 넘게 내고 새벽반을 끊고 한달에 몇번 안가더라도

나는 영어공부 중이라고 생각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피아노를 배우지 않고 월광을 치는 피아노 천재 남편은 누군가에게 배우는 걸 싫어합니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배우는 것도 싫어할 정도였다니(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없긴 하지만) 잘난 척의 정도가 좀 심하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잘 했던 이유는 본인이 궁금한 것이 있었고, 그걸 찾아보는 식으로 공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한달, 아이가 피아노를 치지 않는 동안 그 의자에는 남편이 앉았습니다.

매일 치던 기타를 내려놓고 나도 피아노를 한번 쳐볼까, 하면서 슬쩍 가서 앉더니

"나는 옛날부터 베토벤 월광이 치고 싶었어."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악보를 보더니 이 음표를  사람이 칠 수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된다고 하면서

손가락을 쫙 펴서 쥐가 나도록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정도 매일 저녁 피아노를 치더니, 어느 새 근사한 곡으로 완성을 하는겁니다.


같은 시기에 저는 아이 레슨선생님에게 받아온 쇼팽의 Etude 간단 버전을 치고 있었는데

점점 제대로 치는 남편에게 삘 받아서 저도 쇼팽의 원곡을 펴고 쳐볼까 했지만

악보 단 두 마디를 못넘어가겠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난 이 곡만 레슨을 부탁해야겠어! 한달 정도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안했죠)


그 사이 남편은 계속 연습을 해서 전 곡을 다 외우더니,

그 다음엔 강약도 넣고, 패달도 밟고, 녹음까지 하고는 뿌듯해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지켜보면서, 이 사람이, 피아노 천재가 아니라

그냥 치고 싶은 곡을 연습해서 치는 거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려운 악보이다보니 모르는 표식이 나오면 구글링이나 유투브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어떤 건 꽃모양인데 뭔지 모르겠으면 "piano note flower" 이런식으로 구글링을 해서 그림을 찾는 거죠.


==> 남편의 베토벤 월광 연주


레슨을 꼭 받지 않아도 음표를 읽고 건반을 손가락으로 누를 줄만 알면 이렇게 가능한 겁니다.

중요한 건, 해보겠다는 의지와 연습 뿐.

피아노 "천재"인 듯 보이는 남편은 절대로 피아노 천재가 아닙니다.

배우는 건 수동적이라고 생각하고, 

해보고 싶은 건 틀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해보는 무모함

거기에 제대로 완성해보려고 매일 매일 연습하는 능동적인 태도의 결과물이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고 좀 얄밉게도 잘 논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렇게 못하는 것 때문에 질투심이 들끓습니다만

우리 애도 저러고 잘 놀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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