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햄프셔로 이민와서 살면서 크게 변한 것중의 하나는, 한국에서 직장 회식 자리, 친구들 모임 자리때마다 늘 함께하던 소주를 더 이상 쉽게 마실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한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한식당에 가거나 아니면 근처 마트에서 손쉽게 소주를 구할 수가 있다. (가격은 좀 비싸긴 하겠지만.) 하지만, 한인이 그다지 많지 않은 뉴햄프셔 지역은 소주를 구하려면 보스톤 근처의 코리아 타운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소주 마시는 것은 다소 귀찮은 일이다.
나는 원래 소주를 즐겨서 마시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로는 소주를 안마시고 맥주나 와인, 위스키와 같은 다른 술을 주로 즐기고 있는 편인데, 딱 한가지 경우에는 소주가 땡길때가 있다. 바로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아내가 모든 종류의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가끔 삼겹살을 사다가 집에서 전기 그릴에 구워먹을 때가 있는데, 이 때는 꼭 소주를 마셔야할거 같은 의무감이 들곤 하는데. 그렇다고 소주를 사러 보스톤까지 한시간이 넘는 거리를 다녀올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대안으로 선택한것이 바로 보드카.
막상 보드카를 마셔보면, 알콜 도수가 무지 높은 소주를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냐면, 소주와 보드카의 공통점이 향이 거의 없는 순수한 에탄올 과 물의 조합이라는 점 때문이다.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소주의 경우는 단맛을 내는 감미료가 살짝 들어가기 때문에 보드카에 비해서 살짝 달짝지근한 향이 나지만, 대략 소주와 보드카는 그냥 순수한 에틸 알콜의 맛과 향이라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보드카는 대부분 40% 가 넘는 증류주이고, 소주는 20% 안팍의 희석주이므로 주종이 완전히 다르지만.
위스키를 비롯한 증류주는 대부분 증류기에서 뽑아낸 순수한 에탄올에서 시작을 한다. 예를 들어, 위스키의 경우는, 오크통에 10년쯤 에탄올을 담가두어서 오크통의 색과 향이 배어들에 하는 식이다. 그렇게 배어든 향이 얼마나 좋은지에 따라서 비싸게 가격이 매겨지는 것.
하지만 보드카의 경우는 그 반대라고 볼 수 있다. 숯과 같은 필터를 이용해서, 거꾸로 주정에 들어간 잡 냄새를 깨끗하게 걸러낼 수록 좋은 보드카라고 한다. 물론 최근에는 과일향등의 향을 추가로 첨가하는 것이 유행이긴 하지만, 보드카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제조과정에서 가능한한 여러번 걸러서 가장 순수한 에탄올만을 남겨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마시는 방법 또한 다른 증류주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꼬냑은 손의 열기로 잔을 데워서 꼬냑의 향기가 더 강하게 피어나도록 만드는 방법을 택한다. 또한 위스키의 경우 찬물을 조금 추가해서 위스키의 향이 더 풍부해지도록 만들어서 마시는 방법이 있다.
반면에 보드카는 냉동실에 넣어서 섭씨 영하15도쯤에 보관하여 가능한한 차갑게 마시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차가울 수록 향이 죽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무런 맛과 향이 없는 순수한 알콜을 느낌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보드카와 같이 도수가 높은 증류주는 영하 15도에서도 얼지 않는다.
이 사진은 앱솔루트 보드카를 영하 15도의 냉동실에 며칠간 계속 보관해둔것을 꺼낸 것이다. 꺼내자마자 냉기로 인해서 병 주위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것이 보인다. 나는 이런식으로 보드카를 항상 냉동실에 보관하지만, 지금껏 한번도 얼어버린 보드카를 본적이 없다.
이 상태에서 차가운 보드카를 한 모금 쭈욱 들이키면 정말로 부드럽고 순수한 알콜의 감각만 남게 되어, 40% 도수의 증류주임에도 무척 부드럽게 즐길 수가 있다. 이것이 아무런 향이 없는 보드카를 가장 보드카스럽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물론 보드카는 럼주와 더불어 칵테일의 베이스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술이다. 자극적인 향이 없고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칵테일에 사용하기가 좋기 때문. 보통 마티니라고 하면 진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보드카 마티니도 유명하다. 실제로 007 제임스 본드가 마시는 것은 보드카 마티니라고 한다. 거친 진의 향 대신 부드러운 보드카를 사용하기 때문에 마시기가 한결 수월하다고.
사진에 보이는 앱솔루트 보드카는 스웨덴에서 만든 유명한 보드카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이다. 스미노프같은 다른 보드카들에 비해서 내 입맛에는 앱솔루트가 가장 순수한 느낌이 든다. 물론 미각에 관한것은 매우 주관적이니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느낄 것 같다.
이곳에서 몇년간 살면서, 내 입맛이 완전히 보드카에 적응된후, 우연히 소주를 두병 구할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에 와서 소주를 한잔 마셔봤는데...소주가 생각보다 잡맛이 많이 들어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기대한만큼 실망도 컸다. 고향의 맛을 느낄수 있다는 점에는 감사하지만, 사실 깨끗함, 강렬함 모두 소주보다 보드카가 더 맛있다.
참고로, 세계적으로 보드카를 대표하는 국가로 러시아를 떠올리지만, 사실 보드카의 기원은 폴란드인지 러시아인지 확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실제로 동유럽, 북유럽에서도 러시아 만큼이나 보드카를 많이 소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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