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집 관련해서 수리가 필요할때 오피스에 얘기하면 다 고쳐주니까 참 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는 환풍기 겸 부착되어 있는 전자렌지가 망가져서 사무실에 얘기했더니, 기존 것은 오래되어서 같은 것을 해줄 수는 없고 이제는 전자렌지는 없이 환풍기인 후드만 달아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후드로 바꿔주었습니다. 내 집이었다면 이거 인건비만 또 몇십만원 들었을텐데 말입니다. 결국 전자렌지가 필요해서 따로 주문하긴했지만 전자렌지 가격에 비하면 인건비는 그 몇배를 내야하기 때문에 정말 편하다는 생각을 또 한번 했습니다. 요리하는 레인지 위로 전자렌지 높이만큼의 공간도 생겨서 큰 냄비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요. 아파트라는 게 물론 불편한 점도 있지만 이렇게 메인터넌스를 해주는 것과 집 관리나 정원 관리를 안해도 된다는 점에서 저는 너무나 만족스럽습니다.
(여기서 잠깐 용어 정리! 미국에서 아파트라 불리는 것은 '회사' 소유의 건물에 유닛별로 렌트를 주는 것입니다. 한국 처럼 개인 소유의 아파트는 '콘도'라고 부릅니다. 집 주인이 회사가 아닌 개인인 경우는 콘도에 산다고 얘길합니다. 그러니까 콘도는 개인이 구매할 수 있는 단위의 집이고, 아파트는 회사가 통째로 건물을 소유한 것이지요.)
좁은 아파트는 이제 물건을 많이 정리해서 익숙해진데다, 이제는 부피 있는 걸 사려면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산다는 주의로 가고 있으니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강제로 당하는겁니다. 입구 문으로 들어와서 또 집 문을 열때면 호텔에 들어오는 기분도 들고, 들어와버리면 작지만 우리 가족만의 공간에서 지내면 되니까 저는 만족스럽습니다.
이 아파트로 이사 와서 한국인 외에 아는 사람들은 인사 잘하고 얘기 잘하는 같은 층에 사는 노인들 두 집입니다.
우리 유닛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두 집인데 한 집은 여친과 함께 사는 할아버지 스티브이고 다른 한 집은 우리가 이사왔을때 좀 텃세를 부린 다이애나 할머니입니다.
남편이 외향적인 성격의 스티브와의 수다를 떨고 와서 얘기해준 스티브의 일생은,
세상에나, 만나기 힘든 팔로 알토 네이티브랍니다.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는 이 곳, 베이 지역은 살인적인 물가로 인해 테크 기업에 종사하거나 고소득 직종이 아니면 계속 살기 힘든 곳이기때문에 흔히들 이곳에서는 베이 지역 네이티브를 만나기가 힘들다고(rare) 얘기하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한번 놀라줘야 합니다.
스티브는 팔로 알토에서 자라고 결혼해서 살면서 애플 스티브 잡스도 보고,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도 봤다고 자랑(한번).
딸 아이가 열 살이 되던 즈음에, 이혼을 하고 이 아파트에 들어왔는데 이 아파트에 나무를 뗄 수 있는 벽난로가 있어서 너무 좋답니다.
어째 집 앞에 맨날 Firewood 라고 씌여진 박스가 나와있더만, 나무 떼는 게 삶의 큰 낙이라네요.
어쨌든 이혼 후 스티브의 딸 아이가 운전을 하기 시작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자기에게 들렀는데 어느 날 돈이 없으니 주유를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기꺼이 주유소를 갔다가, 지금의 여친, 영혼의 동반자를 만났답니다. 할머니치고 약간 새침하신 할머니인데 그렇게 여친과 함께 지내게 되었더라는 인생사를, 남편은 붙들려서 들어주고 왔더군요. 이런 남들 얘기는 제가 좋아하는데 말입니다. 너드 남편은 남에게 관심이 없으심.
그리고 다이애나 할머니는
우리가 이사오던 날 우리 유닛에 오더니 인사를 하더군요. 우리가 동부 뉴햄프셔에서 왔다고 하니 반갑다고 자기도 그쪽에서 일도 하고 좀 살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저도 고맙게 인사를 했으나 들른 목적은 우리 이삿짐 차가 장애인 주차장을 다 막고 있으니 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옮기지 않으면 신고를 할거고 그러면 벌금을 좀 내야한다 뭐 이런 약간의 협박도 하면서요. 사실 지금 생각하면 다이애나의 말이 백 번 맞아요. 아파트에는 장애인이나 노인이 많아서 장애인 주차장이 꼭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그때 이사 업체 젊은 녀석들이 옮겨주면 좋겠구만 불편해하더라구요. 제 입장에서는 얼른 이사를 마쳤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서 다이애나가 텃세를 부리는 기분도 들었단 말입니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는 이웃인데 게다가 옆 유닛! 얼굴 붉힐 필요가 없지 싶어서 다이애나에게 말했죠. 이사 트럭이 옮기도록 얘기할거고,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셩(지팡이 같은 걸 짚고 다니심) 이라고, 확~ 너의 편이 되어서 들어주고, 앞으로도 언제든 도와주겠어~ 다정한 눈빛으로 뭐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원래 좀 까다롭게 구는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이 많으니까 다정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괜찮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삿짐 차는 제가 시간당 이백불이 넘는 돈을 내야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장소를 옮겨주었고, 그 뒤로 너어무 친절하신 다이애나가 되어, 웰컴 쵸컬릿과 카드도 보내주시고, 애 학교를 빨리 등록해야 한다고 조언도 해주고, 명절때 늘 인사해주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동네 인터넷이 다 끊겨서 아이 학교도 핫스팟으로 겨우 연결해서 듣고 있었는데,
다이애나가 자기 인터넷 끊겼는데 너희는 어떠냐고 하길래, 동네가 다 끊겼다고 하고 5시 전까지 복구해줄거라는 정보를 알려주면서 우리는 핫스팟으로 쓰고 있다고 하니까 어떻게 쓰는거냐고 물어보네요. 그래서 일일이 설정하는 걸 문자로 친절히 알려줬더니 바로 잘 하더라구요. 다이애나는 옛날 개발자 출신입니다. 물론 인터넷 없던 시절의 개발자여서 다르긴하지만요. 셀폰에서 => 랩탑으로 연결했다고 이모티콘을 보낸 게 개발자 티가 나네요.
허걱, 그러고 나서 저녁에 남편에게 보낼 문자를 다이애나에게 보냈다능...한글이 art work 같다네요.
다이애나도 년초에 다른 문자를 제가 보낸 적이 있어서 서로 민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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