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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알토 일상

갇혀 지내는 시간

by 마미베이 2020. 3. 19.

온 신문을 장식하는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학교는 닫고, 집에서 일하고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집에 머물라는 명령이 내려지고,

우리 세 식구는 거실 구석에서 각자의 일을 한다.

각자의 스크린이나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용한 세 식구, 별로 손 가지 않는 딸과 저녁식사만 하는 남편을 둔 내게 큰 변화는 없지만

낮동안 혼자 시간을 보내던 때에 비해 집중은 잘 되지 않는다.

아이 학교에서 시키는 것들을 스케쥴을 짜서 체크해야 하고

밥도 한두끼 더 먹이고 설겆이도 해야하므로.

집에 필요한 물품이 충분히 있는지, 다음 장을 보러 갈때 어떤 것이 필요한지도 체크한다.

사람이 집에 머무니,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과 각질을 청소하는 것도 횟수가 늘어난다.

 

갇혀있다고 해도

물과 전기가 있는 집이 있으니, '자유롭게' 나가지 못한다는 것 외에 큰 불편이 없다.

오히려 아침에 아이를 위해 도시락을 싸거나 학교에 데려다줘야 하는 일이 줄었으니

늦잠까지 잔다. 죄책감 없이 인터넷을 할 수 있으니 마음도 편하다.

아이 액티비티를 더 늘려야하나 하는 고민도 아예 사라졌다.

 

마트에 없는 화장실 휴지는 집에 남아있는 걸로 한두달 이상은 버틸 거고,

밖에 나가지 않으니 소독제는 있는 걸로 충분할 것 같다.

밥도 많이 먹는 집이 아니라 남은 쌀로 몇주는 살거고

다행히 한박스 사둔 햇반도, 잘 먹지 않던 김도 든든해보인다.

진작 사둘걸 하는 캔음식들이 아쉽고, 동이 나서 못산 토마토 소스도 아쉽긴하지만

냉파(냉장고 파먹기)로 시간을 좀 버는 사이

그로서리 마켓에 물건이 다시 들어찰거라 기대해본다.

 

사실 이런 건 걱정거리는 아니다.

사서하는 걱정일 뿐.

이 시기에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도 얼마나 많을텐데.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Stay at home 명령이 떨어지던 시간,

점심 밥을 먹다 그룹 카톡으로 그 소식을 보자마자

꾸역꾸역 먹던 걸 얼른 삼키고

산발을 하고 그로서리로 갔다.

운전해 가는 동안, 지나가는 모든 차들이 나와 같은 그로서리로 달려 가는 기분,

좀, 위험하단 생각도 들었다.

 

주차장에 딱 들어섰을때 마침 내 옆에서 차를 빼길래 잽싸게 주차를 하고,

당연 카트는 없어서 가지고 간 장바구니 네 개에 보이는대로 과일과 냉동식품, 고기를 담았다.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줄도 점점 늘어나고 선반은 비어간다.

한 사람이 카트를 가득가득 채우니 계산 줄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대로 사려고 담은 것들을 두고 나가고 싶었는데, 냉장 냉동 물건을 제 자리에 가져다 두는 것도 고역이란 생각에 마냥 기다렸다.

 

명령이 떨어져도 essential한 볼일은 볼 수 있다는데, 장보러 못가게 하겠나,

아직 명확한 지침이 공표되지 않아 모르는 일,

명령이 되게 애매하게 발표가 되었기에 일단 필요한 것들을 좀 더 사두고 싶었다.

마스크를 쓰고 부모님을 위해 장보러 왔다는 뒷 줄 청년에게, 내 가방 좀 봐달라고 하고 잊어버리고 안집어온 품목을 더 집어왔다.

내 계산대에서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카드 리더가 안되서 한 사람당 신용 카드를 너댓번은 넣었다 뺏다를 하며 계산을 하느라 고역이다. 카트 한가득 구매한 이 소중한 것들이 신용카드가 안되면 어쩌나 하는 당혹스러운 표정들.

 

평소엔 캐쉬어가 내 구매 물품을 정확히 찍는지 확인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두 배 가격을 준다고 해도 암말 않고 가져갈 기세이다.

구매한 것들을 어깨에 주렁주렁 메고 주차장으로 나오니, 내 주차 자리를 위해 경쟁이 붙는다.

애초에 stay at home 명령을 내릴때, 그로서리는 계속 여니까 패닉되지 말라는 걸 덫붙였어야지,

웬만하면 서두르지 않을 나조차도 미친듯 달려갔으니.

 

차 트렁크에 물품을 넣고 소독제를 마구 뿌려댔다.

손도 안티 박테리얼 티슈로 닦고 또 알코올 손소독제로 닦고, 집에 와서 겉옷을 고스란히 아래층에 벗어두고, 옷에도 소독제를 마구 뿌려서 문앞에 두고, 구매한 것들을 정리하고 샤워!

 

이 무슨 미친 짓인가 싶다.

 

다음 날, 아이와 동네 산책을 가봤다. 평소 주말보다 사람이 거의 없다. 간혹 사람이 보이면 서로 멀리 피해서 돌아간다. 고스트 타운, 좀비 영화 같은 장면이다. 역사에 기록될만한 시기다.

 

4월 봄방학에 아이를 위해 올랜도 유니버셜 스튜디오 여행을 예약했는데 다 취소했다.

아메리칸 에어라인 마일리지로 예약한 비행기는 다 돌려주었다. 보통 변경이나 취소fee가 티켓당 $200불인데 위약금 없이 고스란히 돌아온 마일리지를 보니 AA에 고마운 마음에 코끝이 찡했다. 왜 그리 서둘렀는지, 유니버셜 5일짜리 티켓과 디즈니 2일 티켓만 2천불어치 사둔 것때문에 내내 신경이 쓰였는데, 특히 디즈니는 사용할 날짜를 지정해서 사는 방식이라 걱정이 꽤 되었다.

그러나 전화해보니 디즈니는 정말 행복을 주는 디즈니답게, 올해 12월까지 쓰도록 노력해보고 안되면 그 금액 그대로 다음 티켓 사는 데 쓸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판데믹이고,

동시에 집에 갇혀서 가족들끼리 먹고 자고 싸는 살아있는 삶 그 자체를 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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