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향수병에 시달리며 우는 아이를 위해 뭘 해줄까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가기 싫다는 매쓰 올림피아드 반이 끝나고 나오는 아이 눈치를 보며
최대한 오버해서 밝게 인사를 하며 아이를 맞았는데
아이가 저보다 더 오버스런 밝은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쪽지를 하나 꺼냅니다.
엄마, 방금 오렌지색 자켓 입고 지나간 애 봤어?
걔가 이 쪽지를 나한테 주면서,
너 콜 알아? 콜이 너한테 이거 주라고 했어.
라며 받은 그 쪽지를 보여줍니다.
Open 이라고 써있고
쪽지를 열었더니
I Love You -Col-
이런 내용이!
자기는 내일 콜에게 쪽지를 보내볼까 한다며
너무 즐거운 표정입니다.
너, 첫번째 러브레터야?
라며 저도 덩달아 오바육바를 하며 좋아해주고 나서,
그런데 그 쪽지에 다른 낙서가 있는데?
그리고 너 이름이 없어서, 진짜 콜이 너에게 보낸건지, 다른 애한테 보낸 건지 좀 확인은 안되는 거 같은데?
그럼, 내일 콜에게 쪽지를 써서,
너 이거 나한테 보낸 거 맞아? 라고 물어보겠답니다.
그리곤 저녁 내내 그 쪽지를 고이 옆에 두거나,
주머니 속에 꼬옥 넣어서 갖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회사에서 오자
또 상기된 얼굴로 고이 간직해둔 쪽지를 아빠에게 자랑했습니다.
딸의 첫 러브레터를 본 아빠는
엘사가 철없는 안나에게 한 대답을 해주심...
"You can't marry a man you just met."
뭔 소리인지?...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자기랑 친한 두 명의 친구에게만 쪽지를 보여줄거라네요.
"그럼 친구들이 다 알게 된다"
아니야, 비밀을 지켜달라고 할거야.
"한 명에게 말하는 순간, 비밀은 없는 거야"
친한 친구들이니까 비밀을 지켜줄 거야.
"그래, 친구들이 다 알게 되는 건 생각을 하고 말하는 거야"
어쨌든 다음 날 아이는 쪽지를 가져가서 아이들에게 보여줬고,
콜은 자기가 보낸 게 아니라고 했고
그 쪽지는 다른 여자 아이가 낙서했던 쪽지로 판명나서
결론은 콜이 보낸 쪽지가 아니라는 쪽으로 났습니다.
콜이 부끄러워서 아니라고 그랬는지
쪽지를 전해준 아이가 콜 이름을 빌어 장난을 쳤는지는 모르지만
재밌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아이는 벌써 잊어버린 듯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이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아이의 첫번째 러브레터 해프닝이었습니다.
별 것 아닌 이야기인데
내 딸 이야기라 그런지 귀엽고 재밌네요.
우린 이렇게
새로운 곳에서
또 추억을 쌓아나가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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