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문화에 대해서 제가 딱히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것은 아닙니다. 그냥 이곳에서 몇 년간 살면서 직접 경험하고 주위분들에게 들은 얘기들을 제 관점에서 정리하는 의미에서 글을 써봅니다.
미국 자동차 문화의 가장 독특한 점을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그건 단연코 "픽업 트럭 (pickup truck)" 문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 종류는 패밀리 세단 (중형 세단) 또는 그와 비슷한 유형의 차종입니다. 가정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형태로 만들어진것이 패밀리 세단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 모델 1위 ~ 3위는 아래 표에서 보이듯이 전부 대형 픽업 트럭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www.goodcarbadcar.net
위의 표는 2015년 1월부터 10월까지 자동차 모델별로 미국에서 판매된 수량을 정리한 것인데, 가장 많이 팔린 Ford F-series 대형 픽업 트럭은 지금껏 60만대가 넘게 팔려서, 가장 많이 팔린 패밀리 세단인 Toyota Camry 보다 1.75배 이상 판매가 되었습니다. 물론 판매량 2, 3위도 각각 Chevy 와 Ram에서 생산하는 대형 픽업 트럭들입니다.
출처 : http://www.ford.com
미국에서 지난 33년간, 매년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 1위를 독차지하는 Ford F-series 픽업 트럭.
미국에서 연간 판매되는 전체 자동차 판매 대수 중에서 픽업 트럭은 약 15% 정도의 비율을 차지하는데, 대략 6.5대 중에 한대는 픽업 트럭이라고 보면 되는 비율입니다. 미국은 가구당 자동차를 2대 정도 보유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므로, 대략 3가구당 한집은 픽업트럭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 집의 경우도 이웃집에 픽업 트럭이 한대 있고, 근처에 알고 지내는 가정에도 픽업트럭을 보유한 분들이 4~5명이 더 있을 정도니, 미국 교외 마을에서 픽업 트럭은 꽤 흔한 교통 수단에 속하는거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어째서 미국에서만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픽업트럭이라는 차종이 특별히 인기를 끌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동안 미국 교외 지역에서 살면서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한번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우선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첫번재 이유는, 당연히 화물 운송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라이프 스타일의 특징적인 면은 대도시 주변 보다는 서버브 (suburb) 라고 하는 교외 지역에서 단독주택 생활을 하는 인구 비율이 높다는 점입니다. 유명한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보면 젊은 시절에는 뉴욕 대도시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지만, 프렌즈의 마지막 장면은 챈들러/모니카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고 나서 교외에 단독주택을 구매하여 이사를 가는 것으로 끝납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점점 도시 생활을 더 선호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녀가 있는 미국인 가정은 서버브의 단독주택 생활을 대부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두번째로 많이 팔리는 자동차, Chevrolet Silverado 픽업트럭
그런데, 교외에서 단독주택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아파트 생활과는 달리 이런저런 큰 짐을 실어 날라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잔디밭과 화단을 가꾸기 위한 각종 비료 / 토양 / 농약 / 기구들을 날라야 하는 경우라거나, 집앞 진입로 아스팔트 관리등에 필요한 자재들을 나르거나, 쓰레기 수거 공공 서비스를 안해주는 우리 동네 같은 경우는 일주일에 몇번씩 쓰레기 하치장으로 집안 쓰레기를 실어가서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인건비가 워낙 비싼 편이라서, 왠만큼 부피가 큰 물건을 배송 시키면 적게는 $50에서 크게는 $100 ~ $200 정도의 배송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심지어 가구를 구매해도, 무료 배송이 기본인 한국과는 달리, 미국의 경우는 가구 가격 $300에 배송비 $300 정도를 추가하는 황당한 경우도 발생하곤 합니다.
그러다보니, 미국 가정에서는 가능하면 그냥 직접 자기 차로 물건들을 실어나르는 것이 일상적인데요, 이 경우, 픽업 트럭의 커다란 화물 공간은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막상 픽업 트럭의 최대 적재 중량을 보면 의외로 그닥 높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판매중인 대표적인 대형 픽업 트럭 3종류의 최대 적재 중량은 대략 :
Ford F-150 / Chevy Silverado 1500 / Ram 1500 : 최대 적재 중량 0.5 ~ 1.0 톤
미국에서는 150/250/350 체급 또는 그 이하를 경트럭 (Light duty truck)이라고 분류합니다.
픽업 트럭이 바로 경트럭에 해당하며, 픽업트럭은 미국 각 주별 도로교통법에서 트럭이 아니라 승용차로 분류가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 위에는 Medium duty / Heavy duty 라는 별도의 카테고리가 존재하는데요, 본격적인 상업용 차량들이며,
이 체급부터 승용차가 아니라 "트럭"이라는 카테고리고 분류가 됩니다.
위의 사진은 Ford 대형 픽업 트럭중에 Super Duty F-450 라는 모델입니다.
F-450이상은 트럭 분류 상으로는 Class 4 Medium duty truck 으로 분류됩니다.
견인 용도.
픽업트럭이 일반 승용차에 비해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라면, 대용량 화물을 싣고 다닐수 있다는 점이긴 하겠지만. 사실 미국 가정에서 픽업트럭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주요한 이유는 아마도 견인을 위한 용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살다보면 개인이 직접 다양한 종류의 견인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예를 들어서...
출처 : http://www.motortrend.com
GMC의 픽업트럭 Sierra 가 Airstream 캠핑 트레일러를 끌고 가고 있습니다.
캠핑을 좋아하는 미국답게 캠핑트레일러 분야에도 럭셔리 브랜드가 있는데요,
바로 오하이오 주에서 생산하는 Airstream 입니다. 곡면의 아름다운 금속표면 덕분에
캠핑장에 세워두면 정말 근사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물론 크기에 따라서 1억원을 쉽게 넘어가는 엄청난 고가입니다.
가장 흔하게 볼수 있는 것은 캠핑 트레일러입니다. 땅이 넓은 미국의 대부분의 동네는 산과 강변, 바닷가에 캠핑장들이 정말 많이도 있습니다만, 여름철만 되면 그 수많은 캠핑장이 모두 예약이 꽉 차버립니다. 미국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없이 휴가철에 캠핑을 다니는 것을 흔하게 즐기는 편인데요, 캠핑장에 가보면 텐트보다 더 흔하게 볼 수 있는것이 캠핑카 또는 캠핑 트레일러입니다. 5~6인 수준의 큰 가족이 지내려면 캠핑카가 필요하겠지만, 4인 이하의 가족의 경우는 캠핑 트레일러가 더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캠핑장에 주차를 한 이후에도 급하게 필수품을 사러 캠핑장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거나, 캠핑장 근처에 차로 놀러가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캠핑 사이트에 트레일러만 세워두고 자동차로 이동을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토요타의 대형 픽업 트럭 Tundra에서 견인중인 트레일러에서 소형 보트를 물로 내리는 중.
(배를 물에 넣는 작업을 영어로 launch 라는 동사를 씁니다.)
또한, 미국 가정에서 흔하게 보유하고 있는 것은 작은 보트입니다. 동부 해안 또는 서부 해안에 거주하는 가정들의 경우 작은 모터 보트를 가정에서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아주 흔합니다. 날씨가 좋으면 주말마다 호수나 바다에서 뱃놀이를 즐기거나 낚시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경우에도 보트를 트레일러에 싣고서 견인을 해줄 자동차가 필요합니다.
또한, 픽업 트럭에 싣지 못할 정도의 큰 가구의 경우 별도의 커다란 트레일러에 싣고서 운송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희 집의 경우도 퀸 사이즈 침대의 프레임을 운반하려고 했는데, 픽업트럭에 들어가지 않아서, 친구분이 결국 별도의 트레일러에 침대를 싣고서 자동차로 견인을 해주신 기억이 있습니다.
크라이슬러의 트럭 전문 브랜드 Ram 의 대형 픽업 트럭 1500이 트레일러를 견인중입니다.
이렇게 미국에서는 평범한 가정도 레저 문화를 위해서 직접 견인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에 픽업트럭이 꽤 유용합니다. 왜냐하면, 픽업 트럭은, 한국의 소형 트럭과 다르게 엔진의 힘이 무척 강력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소형트럭에 속하는 현대 포터의 경우는 1톤을 적재하는 모델의 경우 엔진의 힘이 150마력이 채 안되지만, 동일하게 1톤을 적재할 수 있는 Ford F-150의 경우 300마력이 넘는 엔진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픽업트럭이 적재 용량은 적을지언정, 견인력에 있어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합니다. 게다가 트럭에 장착되는 엔진은 대개 최대 마력보다는 토크를 우선시하도록 설계가 되기 때문에, 트레일러를 견인하기에 아주 편하도록 설계되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Ford F-150 픽업트럭은 V8엔진을 장착한 모델의 경우 실제로 3~4톤 정도의 트레일러를 쉽게 견인할 수 있으며, Ford Super Duty트럭의 경우 디젤엔진을 장착한 모델은 8톤 정도의 트레일러 견인도 가능합니다. (참고로, 모노코크 방식의 SUV는 2톤 이상을 견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Chevrolet Silverado 의 뼈대를 이루는 프레임.
여기에 추가로 트럭의 견인 능력은, 프레임 (body-on-frame) 방식의 구조에서 기인합니다. 최근 SUV를 포함한 대부분의 승용차는 주로 모노코크 (monocoque) 방식의 차체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벌레처럼 껍데기가 골격의 기능을 겸하는 구조라는 뜻인데요, 승차감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모노코크 방식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트럭은 전통적인 프레임 구조를 기반으로 만들어집니다. 프레임 구조란 내부에 단단한 뼈대를 만들고서 그 위에 각종 부품과 껍데기를 붙이는 방식입니다. 척추동물이 몸안에 뼈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상상하면 됩니다. 보통 프레임은 모노코크에 비해서 비틀림 강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아주 무거운 트레일러를 끌고서 견인을 하거나 급정지를 하는 경우에도 차체가 뒤틀릴 염려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합니다.
Ford F-150 / Chevy Silverado 1500 / Ram 1500 : 최대 견인 능력 대략 3~4톤
Super duty 체급의 트럭은 훨씬 더 강력한 견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Ford F-250 / Chevy Silverado 2500HD / Ram 2500 : 최대 견인 능력 대략 4~5톤
Ford F-350 / Chevy Silverado 3500HD / Ram 3500 : 최대 견인 능력 대략 5~9톤
오프 로드.
미국은 땅이 넓다보니, 인구 밀도가 희박한 지역이 많습니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도시보다는 넓직한 교외 지역 단독주택 생활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아무리 미국이 부유한 국가라고 하더라도 모든 주택까지 포장도로를 뚫어주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인구밀도가 낮은 교외 지역이나 아예 농가 지역에는 큰 도로와 집 앞을 이어주는 동네 길의 경우 비포장도로로 뚫린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승용차로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매일 다닌 것은 꽤 스트레스가 심할텐데요, 최저 지상고가 높고 서스펜션의 스트로크가 충분히 긴 트럭의 경우는 이러한 비포장도로 역시 문제없이 지나다닐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 정도로 심한 오프로드는 미국에도 흔치 않습니다.
사진은 Nissan의 대형 픽업 트럭 Titan
캠핑을 다니거나 보트를 경인하고 다니는 경우에도 캠핑장 또는 호수근처에서는 오프로드를 흔하게 만날 수 있으므로, 트럭의 높은 최저 지상고는 아주 유리합니다. 게다가 최저 지상고 뿐만 아니라, 프레임구조의 차체도 큰 도움이 됩니다. 오프로드를 운행하면 차체가 크게 뒤틀리면서 전진을 하게 되는데요, 이 경우에 뒤틀림 강성이 뛰어난 프레임구조의 픽업트럭의 구조가 주행 성능 뿐만 아니라 내구성 측면에서도 더 유리하다고 합니다.
이렇듯, 픽업 트럭은 주중에는 아빠의 출퇴근 승용차로, 주말에는 가족들의 레져 용도로, 그리고 가끔씩 대형 화물을 싣고 다니는 용도로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일반 가정에서 픽업 트럭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등록된 거의 대부분의 픽업트럭의 주된 용도는 화물 대신 사람만 타고 다니는 "승용차"라고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많은 주에서 도로교통법상 픽업 트럭 (경트럭)은 트럭이 아니라 승용차로 분류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실용성이 높은 픽업 트럭은 어떤 단점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왜 하필이면 유독 미국/캐나다 지역에서만 판매가 잘되는 것일까요?
2부에서 계속됩니다.
2015/12/27 - [자동차] - [미국 자동차 문화] 픽업 트럭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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