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미국여행

[디즈니 크루즈 판타지] 프렌치 프라이즈를 두 번이나 얻어 먹은 여행

by 마미베이 2016. 5. 13.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를 즐기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내 위장에 든 음식 조절일 겁니다.

먹는 게 큰 부분인데,

아무때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탈나지 않도록, 적당히 배고파져서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조절 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저녁 쇼를 보고 저녁을 먹는 일정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소화시킬 시간이 있어서 괜찮았는데

U.S. 버진 아일랜드에서 스노쿨링을 하며 신나게 놀고 배에 들어왔던 날은 저녁까지 기다리기가 배가 고팠습니다.

수영장 덱에 늘 있는 간식거리를 가져다 먹을까 하다가

더 맛있는 코스 요리를 즐기기 위해 꾹 참고 쇼를 보러 가려고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한 아줌마가 프렌치 프라이 접시를 들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마요네즈와 케찹을 버무린 소스까지.

프렌치 프라이와 마요네즈는 궁합이 정말 환상이거든요.

아, 정말 맛있겠다....한마디 했더니 "Be my guest.(원한다면 먹어봐!)" 라고 아줌마 특유의 친밀감을 보입니다.

 

"Are you sure?" 예의상 한번 물어봐주고 얼른 집어먹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딸에게 너도 먹고 싶냐니까 싫답니다.

다시 물어도 싫답니다.

그래서 저만 두 번이나 집어먹었습니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 남편은,

우리 딸 교육이 참 잘되어 있답니다.

모르는 사람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죠.

실은 울 딸도 배가 고팠거든요.

남이 주는 음식 안먹는 딸이 대견하긴 한데, 엄마는 너무 주책스러웠나요?






두번째 프렌치 프라이를 얻어 먹은 건, 여행을 마치고 올랜도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였습니다.

일주일 내내 잘 먹고, 프렌치 프라이 쯤은 하나만 집어 먹고 남겨 버리던 돼지 같은 여행을 마쳤는데

아이가 프렌치 프라이를 먹겠답니다.

그래서 아빠랑 버거킹에 가서 사오라고 했더니 그 얘길 들은 앞에서 버거킹 버거를 점심으로 먹고 있던 노부부가,

버거킹 세트 봉지에서 프렌치 프라이를 그대로 주면서 우린 이거 안먹을 거니까 먹으랍니다.

고맙다고 하고 낼름 받았습니다.

아이가 음료수를 사러 간 사이, 저는 프렌치 프라이를 그대로 들고 있었어요.

아이가 오자, 노부부 중 할머니가 제게, 너가 프렌치 프라이를 안 먹고 그대로 들고 있었던 게 정말 대단하다는 겁니다.

실은, 저도 먹고 싶은 걸 엄청 참았거든요...하나 먹으면 다 먹어치울까봐...ㅎㅎㅎ

그렇게 시작된 대화에서, 이 분들이 디즈니 월드(신데렐라 성 있는 곳 있죠)에서 일하고 지금은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디즈니 크루즈 다녀왔다고, 디즈니 월드는 다음에 가볼거라는 둥 얘길 했습니다.

어째 할아버지 셔츠가 디즈니 직원 셔츠 같다 했습니다.





디즈니는 플로리다주 올랜도 일대를 먹여 살리는 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올랜도 공항은 인테리어부터 디즈니 공항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디즈니의 시설을 즐기러 혹은 일하러 드나드는 곳입니다.

제 3세계 사람들 뿐 아니라 특히 미국인 노인 고용도 정말 많이 했더라구요.

게다가 바다 위에 일자리라니요.

땅에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일자리 아닙니까.


여행 첫날, 공항에서 호텔 측 실수로 셔틀을 한 시간이나 기다리면서 셔틀을 기다리는 주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들뜬 마음에 모두 크루즈 여행 가겠지, 내심 생각했는데 험악하게 생긴 아저씨 무리가 너무 많았습니다.

저렴한 호텔 셔틀이 와서 한꺼번에 태워가는 걸 보니 단체 여행객인가 싶기도 하고,

아저씨들끼리 어딜 여행가려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한참 뒤에 아름다운 흑인 여성이 라퀸타 호텔 셔틀이 왔었냐고 물어보길래, 아까 왔다 갔다고 하니까, 한숨을 푹 쉬면서 정말 피곤한데 전화를 또 하러 가야겠네...이러는겁니다. 영어가 너무 완벽하고 표정에 여유가 있어 보여서 미국에 사는 사람이겠거니 했는데 전화 걸기 힘들어하는 걸 보니 다른 나라에서 온 것 같았습니다. 

혹시 전화기가 없냐고 묻고 내가 도와주겠다고,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습니다. 휴대폰을 빌려줄때 제가 그 사람이 필요한 번호를 제가 직접 눌러주는데 혹시 나 모르게 국제전화를 걸거나 상대방이 전화를 들고 튀는 상황을 대비한 조심성을 가진 도움이라고나 할까요. 라퀸타 호텔 직원이 받자, 그 여자분에게 전화를 주고 통화해보라고 했습니다. 셔틀을 부르고 나서 어디서 왔냐고 하니까 아프리카 짐바브웨 에서 왔답니다. 얼마 전 꽃청춘에 나왔던 빅토리아 폭포 있는 곳 말입니다. 신나서 빅토리아 폭포 너무 멋있더라, 가봤냐 이런거 물으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자기는 오늘 짐바브웨에서 와서 내일 아침에 바로 노르웨지안 크루즈를 타고 일을 한다고 합니다. 첫번째 항해라고 하네요. 그때 알았습니다. 저쪽에 담배를 피고 있던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 무리들이 선원일거라는 걸. 크루즈 배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리고 크루즈를 타보니, 일하는 사람들이 영어가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임금이 저렴한 남미, 아프리카, 필리핀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이들이 배에서 일하고 번 돈은 자기 가족들의 생계가 되는 것이기도 하답니다. 그래서 최소한 기본 팁은 꼭 챙겨줘야 합니다.




지금껏 배낭 여행과 리조트 여행 두 가지 정도로 생각을 해왔는데 크루즈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뱃놀이로 또 다른 부류입니다.

바다 위에 건물을 하나 지어서 목적 없이 기름을 낭비해 가며 어딘가를 찍고, 특히나 유럽 크루즈와 달리 캐리비안 쪽은 찍게 되는 그 장소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배 안에서 시중을 들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귀족이 되어 즐기고, 먹고, 마시고, 뻗어 자다가 오는 여행입니다.

방 안의 욕실에서 물을 틀면 펑펑 나오고, 수백 개의 방 안에 각자의 욕조도 있고 수영장 여러개, 커다란 공연장 여러개, 고급스러운 로비 등 효율적인 것은 고려할 필요가 없는 럭셔리함으로 그득했습니다.






3박이나 4박으로 갔다면 짧은 시간을 즐기느라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을텐데, 7박씩이나 가는 바람에 3일 정도 지나니까 배 내부에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의 모습에 이런 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배에 처음 오르면 사람들의 얼굴은 애나 어른이나 욕심쟁이로 변합니다.

지불한 시간동안 누려야 될 걸 다 누려야 하기 때문인데요.

수영장에서 놀고, 근처에서 음식을 잔뜩 가져다 먹고, 후식으로 피자와 아이스크림 핫도그 샌드위치를 또 먹고 남기고 흘리면 어디선가 나타난 직원이 와서 삭 치워주고, 먹고 뻗어서 선베드에서 누워 자고, 특히 어른 전용 공간에 가면 바에서 술을 가져다 마시고 누워서 자신의 커다란 배를 흔들며(크루즈 배가 흔들리므로) 자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말초적인" 충족을 하고 있는 이 여행이 "크루즈" 여행임을 실감했습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돼지 모습과 교차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저의 모습이기도 하겠지요.


"양보"라는 미덕은 집어치우고, 내가 지불한 만큼 즐겨야 하기에 마음이 너무 바쁘게 됩니다.

직원들은 늘 어딘가에서 나타나서 나의 손발이 되어 척척 알아서 모셔줍니다.

잠시 돈으로 귀족 신분을 사서 타이타닉을 타고 여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에서 내리기 전날이 되면 점점 환상은 깨어지고 표정은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반짝이던 매직은 사라지고 그와 함께 나의 욕심도 사라집니다.

배에서 내리는 날은 약간 쫒겨나는 느낌도 듭니다.

그 동안 너무 모셔주다가, 이제 안녕, 다음 손님을 받을거니까 얼른 내리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배에서 내리면 귀족놀이를 하던 이 사람들도 또 어디에선가 직원이 되어 일을 하는 거겠지요.

그렇게 돌고 도는 자본주의의 극단에 있는 말초적인 휴가지가 크루즈 되겠습니다.





크루즈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침에 스쿨버스를 타러 나가니 이웃 아이들이 자기네도 올랜도에 신데렐라 성이 있는 디즈니 월드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차를 타고 그냥 공항으로 향하면서 우리 디즈니 월드로 가고 있다고 부모가 갑자기 얘기해서 서프라이즈! 시켜줬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디즈니를 "Surprise"로 데려가야 하는 문화가 있나봅니다.

다른 옆집도 역시 이번 가을에 서프라이즈 디즈니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서 아이들 있을때, 귓속말로 얘길 했었는데 우리집을 포함 초등 학생 여자아이들이 있는 세 집이 올해는 다 디즈니를 즐기는 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우리딸을 포함한 옆집 아이들 모두 디즈니에 그닥 관심이 없거든요.

그런데 부모들은 디즈니를 서프라이즈로 데려가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놀라는 척 해주고요.

혹은 아이들 핑계로 본인들이 가서 즐기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듭니다.


우리집은 럭셔리한 크루즈 여행을 한 이유는 바로 남편이 원해서입니다. 

본인은 자꾸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정말 크루즈를 궁금해했었거든요.

디즈니 크루즈는 아이가 어릴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지 않겠냐고 몇 년간에 걸쳐 조금씩 설득을 했고, 저도 마음을 바꿨고, 그래서 거금을 써서 10개월 전쯤에 예약을 해둔겁니다. 


저도 내심 기대감이 있었고 새로운 경험이라서 다녀 온 후 매년 간다고 하면 어쩌냐고 걱정하면서 갔는데, 결론은 정말 제 취향은 아니었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경험을 한번쯤 해볼만도 하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7박도 아쉽다고 하던데 저는 7박이 좀 길다고 생각되었고, 4박이나 5박 정도면 미친 듯 즐기다 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이도 잘 즐겼지만 여전히 디즈니에는 관심이 없구요. 남편은 아주 좋았는데 다시 간다면 그냥 땅위의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가 더 좋을 것 같답니다. 아이가 좀 더 크고 디즈니를 유치해하지 않을만한 5년쯤 뒤에 또 갈 의향이 있긴합니다만 다른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언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배에서 만난 노부부는 이제 다음 번엔 열번째 디즈니라서 플래티넘 멤버를 달성한다고 자랑스럽게 자랑을 하시더군요. 아이 없는 젊은 커플, 게이 커플끼리도 와서 즐기는 사람도 많더라구요. 진정 원한다면 나이는 다 핑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