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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뉴잉글랜드

날이 적당한 어느 날, 버몬트 나들이(맥주,하노버, 벤앤제리아이스크림)

by 마미베이 2017. 2. 6.

1년에 한번 쯤 한국 드라마를 보는 저와,

5년에 한번 쯤 한국 드라마를 보는 남편까지 가세해서

우리 집에 드라마 도깨비 열풍이 일주일째입니다.


도깨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일주일을 보내고 

별 계획이 없던 날이 적당한 어느 토요일,

우리는 버몬트 주로 향했습니다.


집에서 애매하게 가까운 버몬트는 언젠가는 가야지 하고는 늘 뒤로 밀려있는 곳인데

영하 7도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북쪽으로 길을 나서게 된 이유는 바로 맥주를 사기 위해서입니다.


버몬트 맥주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명한데, 

유명세에 비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유는

맥주 유통을 안하기 때문입니다. 

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는 그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까지 가야 살 수 있다는 것.






세 시간이나 걸려서 Hill Farmstead Brewery 라는 곳에 갔습니다.

http://hillfarmstead.com/main/

고속도로에서 나와서도 한참을 꼬불거리며 달려서도, 또 비포장 도로를 거쳐서 찾게되는 팜에 있습니다.

과연 이런 곳에 뭐가 있을까 싶게 들판과 나무만이 있는 그곳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비틀거리며 나가는 차와 마주쳤습니다.

그 차는 눈길에 미끄러지는 걸까요, 술에 취한 운전자인 걸까요.

하얗게 눈이 쌓인 길옆으로는 다 논밭인 듯한데 스노우모빌을 타고 놀았던 자국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미친듯이 재밌게 놀았을까 상상이 되는 그런 트랙말입니다.



지나가는 차도 없는 길을 따라 도착한 산골 깊숙한 곳에 위치한 양조장에는 차가 많이 주차해있었습니다. 제대로 찾아왔고, 오늘 문을 열었다는 안도감이 밀려옵니다.

입구 근처 왼편의 문으로 들어가니 와인통 같이 생긴 맥주 발효통이 있었고, 맥주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서있습니다.

여기서 9병을 사들고 나오는데, 다른 건물에서 조금 다르게 생긴 병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방금 산 것은 병맥주였고,

안쪽 건물로 들어가면 거기서 생맥주를 살 수 있는 겁니다.

번호표를 뽑고, 제 앞으로 50여명이 있었고,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서야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마실 수 있게 잔으로도 파는데, 여러가지 맛을 테이블에 죽 올려놓고 마시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한 안주로 생굴이나 치즈를 팝니다.

부부가 왔는데 둘 다 맥주를 한잔씩 들고 있는 것도 보입니다. 아까 들어오다 마주친 차는 분명 취해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럼 안되져....취하면 안되니까 거기서 마시는 잔은 한 명당 두 잔씩만 판답니다.


우리는 가져가기 위해 병 가격 3불을 포함한 10불짜리 750미리 생맥주를 주문했습니다.

토요일이라 사람이 많아서 오래 기다려서 직원이 병에 직접 생맥주를 채워줍니다.

세 시간 걸려 직접 사러 가서, 한 병에 10불이나 하다보니 일단 너무 비쌉니다만...

이 맥주 맛을 보면 10불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제가 테이스팅으로 받은 Edward라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향에 취해 꽃으로 환생하는 기분이......

살다 살다 이렇게 맛있는 맥주는 처음 먹어보았습니다.

병맥주는 그닥 특별함이 별로 없고 꼭 생맥주를 사길 바랍니다.

그곳의 맥주 종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뉴햄셔대디가 쓰도록 넘기겠습니다.




<작고 예쁜 대학 도시 뉴햄프셔 하노버>




맥주를 사러 가는 길에 다트머스(Dartmouth) 대학이 있는 하노버(Hanover)에 들렀습니다.

오래 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쪽을 들를 일이 없어서 맥주 사러 가는 길에 들른 거죠.

빌 브라이슨이라는 작가가 세계 여러 곳을 살아보고 자기의 주거지로 선택한 도시로도 유명합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뉴햄프셔의 대학 도시답게...




거리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데 Howe library는 다트모스 대학의 도서관이더라구요.

바로 새집같이 생긴 이것입니다.



열어보니까 책이 있고, 돈도 좀 놓여있네요.

추워서 홈리스가 없어서 그런가, 돈이 그냥 막 놓여있다니요...


시내에 주차를 하고 잠시 걸어본 하노버는 말 그대로 젊은 학생들 위주의 대학 도시라는 느낌을 확 주었습니다.

아, 이런 곳에서 대학 생활을 한다면 정말 심심할 것 같습니다. 

이런 데 있으면 공부밖에 할 게 없을 것 같고요. 



날씨가 영하 7도쯤 되고 너무 추워서 타이 식당에 들어가서 똠양숩과 팟타이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옐프 사이트 찾아서 보고 간 건데 인테리어도 예쁘고 음식을 깔끔하게 잘했습니다. 

(식당 이름은 Tuk Tuk Thai   http://www.tuktukthaicuisine.com/



시내 한바퀴 돌고 나서 차로 하노버를 빠져나가다가 반트럼프 시위를 하러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손에는 반트럼프 문구를 적은 종이를 들고, 한 손으로 유모차를 미는 여성, 피켓을 각각 든 아이들과 함께 나선 사람들....갑자기 이 도시 하노버가 멋지게 제 가슴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우리 마을은 모일 곳이 없어서인지 보수적이어서인지 저런 광경을 보기 쉽진 않다보니, 저런 시위를 하며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젊은) 지성인들의 마을이 너무 멋지더라구요.




<벤앤제리 아이스크림 팩토리>


양조장에 들러 맥주를 사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버몬트 주에서 가장 유명한 벤앤제리 아이스크림 팩토리입니다.


코난 오브라이언이 다트모스 대학에서 2011년 졸업식 축사를 할때 했던 가장 인상적인 말은, 

4:30초쯤부터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뉴햄프셔는 정말 특별한 곳입니다.

이곳에 도착해서 저는 이 곳 뉴잉글랜드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생각했죠.

와, 나 지금 벤앤제리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진 주 바로 옆에 있는 주에 있어!"

 

벤앤제리 아이스크림 팩토리가 있는 바로 옆 주가 뉴햄프셔이죠...ㅎㅎㅎ

하노버는 버몬트와 뉴햄프셔주의 경계에서 뉴햄프셔주에 위치하고 있고요.

그의 위트가 재밌었습니다.





벤앤제리 아이스크림 팩토리에서는 투어가 가능한데 어른은 $4의 입장료를 받습니다. 마지막 투어인 5시 투어를 했는데 사실상 기업 홍보인 이 투어를 돈까지 내고 왜 하나 싶긴 하지만, 관심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 공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고, 또 꼬불한 길을 달려 가는 차 뒷좌석에서 고생하는 딸아이를 위해서 들러야하는 곳입니다. 

마지막에 조그만 아이스크림을 줍니다. 




투어의 첫번째는 이 기업에 대한 무비를 보는데, 벤과 제리가 아이스크림 사업을 시작해서 어떻게 변해왔는지, 얼마나 환경을 생각하는지 등 기업 가치에 대한 이야기였고, 다음으로 간 곳은 사진을 못찍게 하는 공장 라인 구경이었습니다. 만들어져 나오는 라인의 아이스크림을 보는 것도 재미있긴 했습니다. 


공장 라인에서 아이스크림이 나오기 시작하자 직원들이 초반에 나오는 아이스크림 통을 막 꺼내서 밖으로 던지더라구요. 바닥으로 막 떨어지는데 신경도 안쓰면서 멀쩡한 아이스크림 통을 빼는 겁니다. 대체 왜 저런 이상한 행동을 하냐고 물으니 처음 나오는 것들은 아이스크림과 섞이는 덩어리(chunk)가 잘 안 섞여서 그렇게 버린다고 합니다. 이 큰 회사에서 저런 이상한 수작업을 하다니, 피식 웃음이 나더군요.

그래서 맛이 없나..ㅎㅎ 저희는 벤앤제리 보다는 하겐다즈를 좋아하거든요.





늘 새로운 맛의 아이스크림을 시도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하루 종일 맛보는 연구 부서 직원들도 있답니다. 회사에선 그들을 위해서 운동 회원권을 끊어주고 죽지 않도록 특별히 관리를 한답니다. 하루 종일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것이 직업이라니 아이들에게는 꿈의 직업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건강을 망치는 극한 직업이네요.

마지막 나올때 준 샘플 아이스크림은 처음엔 브로콜리 아이스크림을 준다고 농담을 해서 아이들을 놀래키더라구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카라멜 아이스크림을 샘플로 줘서 맛있게 먹었는데 아이는 쵸콜렛이 아니어서 실망했습니다.





기프트숍에는 버몬트답게 메이플 시럽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투어를 마치고 나오니 저녁 6시, 날씨는 하루 종일 춥고 꽤 북쪽인 이곳에 눈발까지 날립니다.  차에 스노우 타이어가 없다면 겨울에는 버몬트에 방문하지 않기를 권하고요. 가을에는 모든 곳에 나무가 많아서 장관을 연출하니까 정말 강추!합니다.

남편은 그 근처 동네 리쿼 스토어에서 다른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를 판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몇 곳에 들렀지만, 일주일에 한번 배달 되는 날 그 즉시 다 팔린다고 해서 더 못샀습니다. 처음 들렀던 힐 팜스테드 양조장에서 잔뜩 산 것으로 위안하며, 다음에 날짜 맞춰서 다시 오자고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저녁을 먹고 가려고 동네 햄버거집에 갔으나 동네 사람들 다 모였는지 그 집만 북적거렸습니다. 

두 시간 기다려야 된다기에 포기하고

도깨비가 건네는 서브웨이 샌드위치 가게에 가서 서브로 떼우고

아이가 벌써 밋볼 샌드위치를 하나 다 먹는다는 걸 깨달으며 집으로 왔습니다.





추위와 꽃향기 나는 맥주 한모금 때문이었는지 저는 차에서 골아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