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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햄프셔 일상

한식의 세계화 잡채

by 마미베이 2016. 8. 13.

날씨만 좋으면 가는 수영장에서 친구 엄마 A를 만났습니다.

수다를 떨다가 A가 요즘 잡채 레시피를 보고 있다길래 우리 집에 잡채면이 있는데 내가 요리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고 해서 급작스레 플레이데잇 잡채 만들기가 정해졌습니다.




A는 매사추세츠 출신이고 남편은 이탈리안 집안이며 남편이 한국에 파견 근무를 했던 베테랑이어서

한국이나 일본 동남아 음식을 엄청 좋아합니다. 심지어 이 집은 김치를 사다 먹을 정도입니다.

한인 마켓의 푸드 코트에 파는 김치 볶음밥이 자기가 하는 거보다 맛이 없다는 둥,

가끔 요리할 게 없고 밥만 남아있으면 주말 아침에 남편에게 김치볶음밥을 해준다고 할 정도로 좋아합니다.

불고기, 김치 볶음밥, 김밥을 자주 만들어 먹는데 최근 채소가 많이 들어가는 잡채가 너무 괜찮아보인다는 거였습니다.


저도 레시피를 검색해보니 뭐 이리 간단했었나 싶게 간장, 설탕, 마늘, 참기름만 있으면 되는 거더라구요.

이렇게 한국인이 아닌 경우에 신경써줄 것은 바로 "참기름"을 넣을 것인가 말것인가입니다.

참기름이나 음식 재료에 알러지가 있는지 알러지 체크는 당연 기본이구요.

그런데 A네는 참기름을 저보다 좋아하는 사람이라 상관없습니다.

저는 참기름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아서 기본 베이스를 올리브오일로 하고 마지막에 한두 방울만 떨어뜨려서 사용합니다.


그 외에는 당면 삶는 것만 좀 어려운 듯 한데, 

A는 역시나 버미셀리 면을 많이 써봐서 얼마나 딱딱한지도 잘 알고 있길래 

그냥 물에 담갔다가 끓이라고 알려주고 워낙 한식요리에 대한 기본을 알고 있는 A라서 대충 보여주고 같이 먹었습니다.

이로써 한식 세계화에 또 일조를 했다는!

남편도 저도 잡채를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되서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덕분에 좀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우리집에 오면 자연스럽게 

널린 물감이나 파스텔, 크레용으로 아무 종이나 집어들고

마구 그림을 그리고 노는데

이건 이 집 첫째 딸이 그린 그림,

오른쪽 소녀는 우리 딸이고 옷도 오늘 입은 그대로 그렸습니다.

아래 숫자는 우리 딸이 7살, A네 둘째가 8살, 첫째가 10살이어서 쓴 번호라고 합니다.



이 집 둘째가 그린 그림 



....


원래 아줌마들은 남의 집 얘기가 제일 재밌는 거니까 A네 집에 대한 얘기를 좀 풀자면

A는 딸 둘이고 둘째가 우리 아이와 같은 학년입니다.

A네 첫째 딸은 이제 4학년이 되는데 우리집에 놀러 오면서 이렇게 얘기하더랍니다.

"엄마, 어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L네 집에 가면 다 좋아져. 나는 L네 집에 가서 노는 게 너무 좋더라."

뭐 이런 따스한 말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A가 덧붙이기를, 너와 L이 너무 좋아서 여기서 먹는 음식도 더 맛있고 기분도 좋고 그렇다....

아오, 아무리 빈말이라도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안좋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이 집 식구들이 좀 따스한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눈물나게 고마운 얘기더라구요.


그런데 이 집에 다음 주 부터 아들 둘이 더 생깁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들이 아니고 손주 둘인 건데,

본인의 Step daughter(즉 남편의 이전 결혼에서 낳은 딸)의 아이들인 겁니다.

14살, 4살인데 큰 애는 본인의 애보다 더 나이가 많아서, 14살 손주에게는 이 집 큰 딸이 아줌마(aunt)가 되는 거지요.

당연히 A는 할머니가 되는 거구요.

어쨌든 남자 아이 둘이 더 생기는데, 얼마나 키울거냐고 하니 "Forever"랍니다.

사연인 즉,

이 아이들의 엄마는 결혼을 하지 않고 낳은 아이들이고, 두 아이들 모두 당연히 아빠가 다른데

책임감 없이 키워왔던 건 물론이고, 마약에 취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결정적으로 마약을 하고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다가 걸려서 아이들을 뺏긴거죠.

곧 감옥에 가게 되었고, 당연히 아이들은 더 이상 키우지 못할 뿐더러 다시는 키울 수도 없겠죠.

그래서 이 집으로 오게 된거랍니다.


A의 첫째 딸에게 의논을 했더니 첫째딸은 그러더랍니다.

우리에게 큰 변화가 있겠지만 그 변화를 감수하고라도 그 아이들은 우리 집에 오는 게 맞다. 그러니까 우리집에서 같이 지내자.

아, 역시...제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따스한 아이입니다.

A에게 대단하다고 했더니, "I have no choice"라고 하면서 전혀 불평을 하지 않더라구요.

A가 평소 정의감에 불타는 건 알았지만, Step daughter가 얼마나 이기적이고(selfish) 못된(mean) 엄마인지에 대해 화가 난거지

본인의 생활에 큰 변화가 온다는 것, 두 아이에 대한 책임이 생긴다는 것에 불평하지는 않더라구요.


14살짜리 그 소년은 통화를 하면서 자기네를 받아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더랍니다. 너무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고 먹는 것도 잘 안챙겨줬었고 그런 환경에서 따스한 가정이 생겼다는 것이 꽤 안도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이 집 두 딸도 두 아이들이 더 온다는 것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고 하네요.


A는 이 아이들에게 한국 음식도 먹이고 한국어도 가르쳐줄거라고 농담을 하면서 갔습니다.

자그마한 돌봄도 힘든 건데 A가 그저 대단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잡채나 가끔 더 해다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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