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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햄프셔 일상

바람, 나무, 정전

by 마미베이 2017. 11. 4.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지금보다 더 젊었을때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라는 곡을 좋아했는데 이 노래가 '고백부부' 드라마에 나오니 더 흥얼거려집니다. 명곡은 명곡이지만, '책임'이라는 단어가 더 무겁게 다가오는 사십대에겐 '바람' 소리가 노래로 들리는 낭만 따위는 다 날아가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제게 '바람'은 

'나무'로 연결되어 

'전깃줄' 이렇게 이어지게 되었거든요.


나무가 유난히 많고 전깃줄이 땅속으로 묻히지 않은 동네에서, 

"바람이 불면? 

전기가 끊긴다."

라는 상식을 가지고 삽니다.


이번엔 시속 65마일(100키로)의 바람이 불었고, 약 30만 가구의 전기가 끊겼으며, 3일간 정전이 되었습니다. 그 규모는 3년 전 눈폭풍때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전기회사의 사진을 가져와봅니다.


단풍으로 유명한 뉴햄프셔의 가을,

쓰러진 나무와 전깃줄 풍경입니다.







나무가 쓰러지면서 전깃줄이 젖은 바닥에 닿으면 위험할 수 있기때문에 급한 일이 아니면 길을 나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나무 작업하는 사람과, 전깃줄 작업하는 사람들이 조를 이루어 신속하게 길을 열고 전기를 복구합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빠르게" 일잘한다는 생각이 드는 집단입니다.

전깃줄이 바닥에 묻히지 않았으니 생긴 기술이겠죠.







지난 5년간 쉐드에 있는 비상용 발전기를 제대로 사용한 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전기가 없으면 불편한 건 

물을 못쓰는 것(우물물을 전기 펌프로 사용하기 때문),

추운데 난방이 안되는 것, 

냉장고에 음식이 상할까 걱정되는 것, 

차고 문을 손으로 열어야하는 것 정도입니다. 


휴대폰 인터넷 요금이 제한이 있어서 와이파이 없이 쓰려니 제한된 용량을 많이 써버려서 인터넷을 맘껏 못쓰는 것도 불편하긴 했습니다.


비상용 발전기를 돌리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이 되긴 하지만, 이걸 돌리는 비용이 결코 무시할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우리집 발전기는 5000와트 수준인데, 한시간에 대략 1갤런이 넘는 휘발유를 먹더군요. 

아무리 미국이 기름값이 싸다고 해도 1갤런에 $2.5 가 넘는 상황에서 하루 종일 발전기를 돌리면 $60 이상의 연료비가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하루 정도만 쓴다는 보장이 있으면 $60 을 사용하는건 가능하겠지만, 

정전이 한번 되면 며칠이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매일 전기세로 $60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간헐적으로 발전기를 돌리면서 발전기를 돌리는 잠깐동안 물과 난방과 냉장고와 인터넷을 재빨리 사용하는 식으로 사흘동안 버텼습니다.






우리집의 피해 상황은 농구대 옆에 공 막아주는 그물을 거는 막대기가 부러졌다는 것 정도입니다.

스톰 직전에 큰 돈 들여 부러질 나무를 미리 잘라줬으니...



30-50프로의 집이 정전이기 때문에

던킨 도넛에는 먹을 것을 사려는 차가 줄을 서고,

동네 가게들은 자기네 오픈했으니까 오라고 하고



마음이 따스한 동네 아줌마들은 자기네 집은 전기 안나갔으니까 필요하면 우리집에 오라고 포스팅을 했습니다.





남쪽 뉴햄프셔 일대의 전기가 다 나갔다는 겁니다.

복구는 병원, 공항, 학교와 같은 주요 시설, 비즈니스,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 콘도 순으로 해주기 때문에 저희처럼 띄엄 띄엄 집이 있는 외진 곳은 우선순위가 가장 떨어집니다.




남편은 촛불 켜놓고 충전했던 노트북을 켜고, 휴대폰의 LTE를 연결해서 일도 하고



발전기를 잠시 켜서 전기가 들어오는 동안에는 게임까지....


(엔딩을 보기 5분 전에 정전이 시작 되는 바람에 엔딩을 못봤다고, 발전기를 돌려서라도 꼭 해야겠답니다. The Last of Us가 그렇게 잘 만든 게임이라네요. 욕만 나오드만...


게임에 나오는 대사에 욕이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길이 닫히고 위험해서 스쿨버스가 다닐 수 없어서 학교는 이틀간 휴교를 했습니다. 아이는 지루해서 책읽다가



헤드 라이트 켜고 읽다가



옆집 아이와 놀아서 신났습니다.

발전기를 내내 돌리는 옆집에 가서 팝콘 먹으며 영화보고 하루 종일 놀았습니다. 집집마다 전기가 없기 때문에 화요일 저녁이었던 할로윈 트리커트리팅은 일요일 오후로 옮겨졌습니다. 

이번 할로윈은 어른들에겐 진짜 CREEPY하네요.



그리고 이번의 정전 기간에도 저의 좋은 친구에게서 따스한 구호품을 받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니네집은 전기 나갔냐, 언제 들어올지 모르겠다며 서로 하소연을 하는 수다를 떨고 지친 표정으로 위로해주며 헤어집니다.

테니스 레슨에서 만나는 할머니들은 우리가 전기 안들어온다고 불편해하는 이 정도는 '땡깡'에 불과한 것이지, 푸에르토리코 같이 휩쓸고 지나간 곳은 어떤 심정일지 상상이 안된다고 하시더군요.


정전이 되면,

평소에 너무 당연했던 사소한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걱정해주는 친구들의 따스한 마음도 더 크게 느껴지고요.

좀 불편하고 피곤했지만 덕분에 올해 못했던 캠핑을 삼일간 한 기분입니다.

하지만 올 겨울, 캠핑을 또 할일은 없길 바랍니다.



** Nixle 에 알림 설정을 해두면 동네의 재난 상황에 문자를 보내줍니다.

http://www.nixle.com 에 회원가입을 하거나

혹은 간단하게 888777 로 살고 있는 곳의 zipcode를 문자로 보내면 됩니다.





이번에 학교에서 보내는 알림 서비스가 같이 망가져서, 휴교 안내를 nixle로 하는 바람에 등록 안해뒀던 저 같은 사람들은 좀 헤맸습니다. 등록하고 나니까 도로 상황이나 동네 안내할 것을 이 시스템으로 보내주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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