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설, 추석처럼 미국에서는 땡스기빙과 크리스마스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모인다고 한다.
그러니 가장 이동이 많은 연휴 중 하나인 땡스기빙 전날,
눈이 조금 온다는 예보는 갑자기 Snow Storm 눈폭풍일 거라고 바뀌었다.
결국 오랫만에 친구네 세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기로 했던 약속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눈은 평소 뉴잉글랜드에 내리는 눈의 양치고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이 날 저녁 전기가 끊겼다.
전기 끊기기 전, 낮에 달아둔 크리스마스 장식 불을 켠 우리 집의 아름답고도 평화로웠던 풍경.....
....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 전 주에도 나무가 하나 쓰러져서 전기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두 시간 정도 전기가 나갔다 들어왔던 적이 있어서
나는 금방 들어오겠지 플래쉬 켜고 놀며 태평하게 있었는데
남편은 갑자기 나가더니 발전기를 꺼내고 어두운데서 별 난리 묘기를 다 부리고 있다.
이사오자마사 산 발전기를 이번에 처음 돌려보는데
시동을 걸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어둠 속에서 머리에 플래쉬 라잇 켜고
버튼 네개를 각각 조합해가며 눌렀다 선을 당겼다...
한참을 씨름하다 알아낸 사실은,
발전기 기름 통에 기름이 없다는 것.
어두운 데서 플래쉬로 비춰보니 기름탱크가 비었다는 알파벳 E 가 가득찬 F(Full)로 보였다고 한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조금 있는 기름(휘발유)을 붓고 발전기 켜는데 성공,
시동 거느라 다친 팔목 근육을 움켜쥐며
보유한 휘발유가 너무 적다고 생각한 이 사람, 기름을 사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휘발유를 사러 가기 위해 거라지 문을 열고 차를 빼려고 하니
기나 긴 드라이브웨이에(50미터나 된다) 눈이 많아서 차가 안움직인다.
눈을 치우기 위해 스노우 블로어를 꺼냈다.
스노우블로어로 시끄럽게 눈을 치우다가 또 왔다갔다한다.
왜 그러냐고 하니, 스노우블로어가 고장이 났다는.
한밤중에 전기는 나갔지, 발전기는 겨우 켰는데 휘발유가 모자르지
드라이브웨이는 눈때문에 차가 나갈수가 없지
스노우블로어는 고장났지....
신기한 것은 한참 후 자기가 고쳤다나.
뭐가 고장났는지 모르겠는데 부러진거를 뭘 찾아서 잇고 해서 동작을 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그 밤에 눈을 다 치우더니
차를 끌고 나간다.
(여기서부터 아래 8장의 사진은 PSNH라는 전기회사 페이스북에서 퍼온 사진임)
나는 저 사람이 대체 왜 저러나 싶어
전기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이 시간, 이미 남부 뉴햄셔주의 1/3이 전기가 나간상황이다.
처음에는 5천, 5만,......10만....순식간에 25만가구의 전기가 나갔다.
전기회사에서는 고치고 있어요...하다가, 소요시간 예측할 수 없음으로 바꼈다.
며칠 각오하시라.
바람 한점 불지 않아
내리는 눈이 소복히 나뭇가지에 쌓인 그 날 밤,
습기를 머금은 눈은 나뭇가지를 휘게 하였고
휘거나 부러진 나뭇가지는 전깃줄을 습격하였다.
순식간에 모든 동네 길마다 일어난 일이었다.
눈은 바로 바로 치워서 길 바닥에 눈은 없었고
우리는 사륜구동 SUV에 윈터타이어를 장착한 차라 괜찮았지만
거리는 여기 저기 온통 부러진 나무들로 위험했던 그 밤...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거다.
<위 사진 출처 https://www.facebook.com/psnhnews?pnref=story >
결국 그날 밤 남편은 동네 주유소를 다 돌아다녔다.
역시 전기가 나간 주유소는 휘발유를 펌프할 수가 없어서 팔 수가 없었다.
옆 동네에 갔다.
대도시라 전기는 끊기지 않았지만
땡스기빙 연휴라 직원들이 주유소 문닫고 다 휴가를 갔다.
결국 눈길에 나무 넘어진 걸 피해 이리저리 헤매다 휘발유없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전기 복구는 병원이나 공항, 학교 근처부터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가정집만 모여있는 우리집은 가장 우선순위가 떨어진다는 걸 알았다.
집 전기 배전판으로 발전기와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냉장고, 히터,거실, 우물펌프 정도인데
발전기는 휘발유를 많이 먹는다.
하루 종일 트는 경우 갤런당 $3.3 정도인 지금 $40 정도가 들어간다.
말하자면 전기 조금 쓰자고 하루에 4만원 넘게 내고 있는 꼴,
전기 회사 PSNH 홈페이지에 보면 하루 휘발유 $40씩 쓰며 버티고 있다는 불평 댓글도 있다.
아주 시끄러운 것도 문제, 옆집 발전기 소리가 들릴 정도니 경운기 한대 시동 걸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상수도가 아닌 우물펌프여서 전기 없으면 물 안나오는 것도 크게 불편한 점이다.
발전기 돌리는 동안 설겆이 하고, 씻고, 거실에서 머리 말리고, 화장실도 가고, 집도 확 데워놓고 껐다 켰다를 반복하면서 지냈다.
전기가 나갔던 다음 날,
땡스기빙이라고 가족 같이 지내는 에릭맘이 밥먹으러 오라고 벙개 초대를 하여
가서 거하게 "얻어"먹고 왔다.
작년 땡스기빙에도 에릭네랑 우리랑 같이 식사를 했는데
올해도 같이 보내는 기분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올해는 땡스기빙이라고 모인 것 뿐 아니라
전기 끊긴 가족 쉘터 가듯 절실한 마음으로 간거라 더 따스하게 느껴졌다.
남은 음식은 싸와서 다음 날 구호품으로...
쇼핑도 하고
이글루도 만들.....다 말고. 눈이 안뭉쳐져서 안도와줌...
마당은 물론 동네 공원에 가서 썰매도 탔다.
그런 식으로 우린 5일을 버텼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번에 내린 눈이 얼마나 무거웠냐면
앞집은 늘 여러명의 남자들이 삽으로 눈을 치우는데 도저히 삽으로 눈을 뜰 수가 없어서
눈치우는 업체를 불러서 치웠다.
나뭇가지에 눈이 쌓이면 정말 아름답다.
그토록 아름다운 눈이 너무 무거우면 이런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명절에 칠면조도 못먹고 전기선 고쳐주신 PSNH직원 여러분에게 감사인사를 전해야 할 듯 하다.
아, 캐나다와 근처 주에서 직원들이 지원을 와서 밤날을 내리 일하여 그나마 5일만에 전기가 들어왔다는 것.
열심히 일해주는 전기회사 직원들에게 익명의 고객은
감사의 표시로 칠면조와 크렌베리소스, 감자샐러드 등의 명절 음식을 주고 가는 훈훈한 풍경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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