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앞머리 자르는 게 나을까 그냥 기르는 게 나을까?"
남자에게 이런 질문은 '나 변한 거 없어?'라고 고문하는 것과 같은 것일텐데
나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앞머리가 있는 이때가 나아, 지금이 나아?" 라고 계속 질문을 했다.
여자친구의 확~변한 염색한 헤어 스타일도 못알아보는 응사의 쓰레기와 반대 스타일인 서울 남자 칠봉이 꽈인 남편은 웬만해선 여자에게 해주어야 하는 말에 대한 '정답'을 외워두고 사는데(결혼한지 몇년이 지나니 그 말에 영혼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내가 자주 하지 않는 이런 질문에 대한 정답은 준비해놓지 않았던지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다.
"다 예뻐"라고 뒤늦게 얼버무리긴 했지만 영 어색하고 고민스러워하는 것으로 보아
속으로는 "그거나 그거나 똑같은데 뭘 묻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다 보인다.
어쨌거나 이번엔 또 다시 앞머리, 일명 뱅(bang)을 자르기로 하고 미용실에 다녀왔다.
엄마 머리를 할때마다 남편과 아이는 고생이다.
일단 고속도로로 한 시간이 걸리는 보스턴 근처의 미용실로 남편이 나를 데려다 주어야 하고
(보스턴은 길이 복잡하고 운전이 한국처럼 험해서 나 혼자는 못가기 때문)
엄마 껌딱지인 아이는 늘 내 곁에 있어야 하므로
남편과 아이는 자동으로 몇 시간을 미용실 안에서 버텨야 하는 일 중의 일이다.
일년에 두 번 가는 일,
남편은 게임과 동영상을 잔뜩 준비해서 미용실 한구석에서 아이와 하염없이 놀면서 기다린다.
내가 하는 '매직 스트레이트'는 보통 세시간 반에서 네시간이 기본이니
미안하지만 엄마가 미용실 가는 날이 나의 가족들에겐 꽤 고역일 듯.
이번엔 앞머리만 하기로 했기 때문에 두 시간 만에 끝냈더니
왜 이리 빨리 끝났냐고 슬쩍 좋아하는 티를 내는 남편,
"앞머리 생겼지?" 라고 했더니
앞머리가 원래 있던 건데 앞머리를 잘라서 없어진거지 왜 생긴거냐고 반문을 한다.
그래, 맞네 맞아!
내가 다니는 미용실은 보스턴의 한인 타운인 알스톤에 위치하고 있다.
하버드 애비뉴라는 이 거리에 한국 미용실이 몇군데 있는데 이 미용실로 머리를 하러 갈때마다 기분이 좋은 이유는 예뻐진다는 이유보다는 미용실 언니 덕분이다.
몇 년 전에 이 미용실을 인수한 이 언니는 바로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유형의 사람이다.
이런 행동가들은 여자들 중에 흔치 않아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에너지를 받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
이 언니가 미용일을 시작한 것도 미국으로 오기로 되어 있던 어느 날 사람들이 미국에서 미용일을 하면 좋다더라는 말에 동네 미용 학원에 바로 등록해서 배우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하게 된 것이란다.
지금 운영하는 이 미용실에서 일을 하다가 원래 운영하던 중국인 부부에게서 인수받아(실은 중국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엄청 꼬셔서) 지금은 주인으로 있다.
앞뒤 재지 않는 이 멋진 추진력!
일단 일을 저지르고 나면 좋은 사람들 덕분에 수습이 되더라며 상대하기 어려운 세계 각국 출신의 독특한 직원들을 웃으며 상대하는 여장부, 얘기를 해보면 이보다 더 시원스러울 수 없는 털털함을 가졌다.
그러니까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길까봐 나는 안한다, 가 아니라 일단 해보고 닥친 문제는 그때 해결하겠다는 스타일.
가끔 무료한 삶에 지쳐있다가 이 언니랑 얘기를 하고 나면 막 힘이 솟는 기분이 들때도 있다.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랄까?
남자 헤어컷 손님도 많은데 영어는 물론 일본어도 잘하시니 손님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 다양한 것 같다.
아, 그리고 여기를 갔던 첫번째 이유는 매직 스트레이트가 다른 곳에 비해 꽤 저렴한 가격이어서였는데 내가 지금껏 해본 매직 스트레이트 중에 제일 잘하는 분이라고 얘기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약을 쓰고 오래 가게 펴준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다. 헤어컷은 마음에 들때도 있고 아닐때도 있는데 그건 미용실 갈때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가 어떻다고 얘기하기는 좀 어렵다. 왜냐면 내 머리는 어떻게 자르나 쭉쭉 뻗게 잘 만들지 않으면 다 마음에 안들고 직선으로 뻗게만 해주면 마음에 드는 독특한 나의 취향때문이라고 해두자. 왜 직모인 사람은 웨이브 머리에 대한 로망이 있고 곱슬인 사람은 전지현처럼 찰랑거리는 머리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은가? 남들이 보기엔 별 차이도 없구만 혼자서 몇백불씩 써가면서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여자의 마음이란! 어쨌거나 결론은 매직스트레이트는 자신있게 추천한다는 의미이다. 헤어컷 가격은 다른 곳과 비슷한 것 같다.
이번에 가서는 '너무 머리를 잘 펴주는 것도 문제예요, 내가 이번엔 반 년이 넘어서 8개월만에 왔잖아요?' 라고 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장삿속으로 하는 계산이 전혀 없으며, 반 년 전에 와서 수다 떨었던 내용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본인은 아름다움의 추구보다는 사람만나는 게 좋아서 이 일이 좋다고 한다.
이번에 수다 떨었던 내용 중에 기억 나는 것은
"우리 남편은 웰리슬리에 이발소 다니는데요..." 라고 했더니,
이 언니 왈, 아 거기 알아요. 얼마전에 여자손님이 왔는데 그 웰리슬리 이발사 며느리라고 하면서
"아버님, 죄송하지만 제가 머리를 다른 곳에 가서 하겠습니다." 하고 여기로 왔더라는...
미용실은 알스톤 '가주 순두부' 옆에 있다....
이번에 가주 순두부를 처음 가보았는데
맛있어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
해물 순두부와 제육볶음, 완전 반했어...한국에서 밥 사먹은 기분!
너무 맛있게 먹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푹 잠이 들어버렸다는.
Beautiful Cuts
52 Harvard Ave, Allston, MA
857-284-3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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