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10월의 마지막 밤, 잊혀진 계절 이용의 노래를 들으며 처량해하는 날로 지냈는데
이제는 할로윈으로 괴기스러운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 할로윈 코스튬을 정하는 일이 꽤 큰 숙제인데
올해는 아이가 있는 옷 중에 백설공주를 입겠다고 해서 신경쓸 것 없었고
잭코랜턴 만들 호박 사다두고
할로윈 날 나눠줄 쵸컬릿 백 몇 개 사다두고
작년에 쓰던 장식 설치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옆집 덕에 새로운 놀이를 발견했네요.
바로, 팬텀 놀이입니다.
할로윈 며칠 전, 저녁 7시가 조금 넘었을까, 밖이 캄캄해졌을 때 현관문 벨소리가 들렸습니다.
나가보니 아무도 없고 문 앞에 캔디백이 놓여있네요.
You've been Booed! 라는 종이 한 장과 함께 쵸컬릿과 할로윈 장난감이 든 바구니입니다.
하하하..
작년에도 이런 캔디백이 놓여있었는데 그때는 옆집 아이 M과 엄마가 후다닥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똬~ 봤지 뭡니까.
올해는 들키지 않으려고 자기집 현관까지 안뛰어가고 우리집 주변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 같았어요.
날이 추우니 얼른 들어갈 수 있게 캔디백만 가지고 현관문을 닫고 들어와줬죠.
예쁜 보라색 마녀 그림의 캔 안에 징그러운 거미 장난감들과 glow stick, 다양한 종류의 쵸컬릿, 요요까지 럭셔리한 느낌이 풍기는 게 딱 옆집 엄마 스타일이더라구요. 평소에 바쁘게 일을 해서 생일이나 이런 거 되게 잘 챙기거든요. M이 울 아이와 동갑내기이기도 하구요.
어쨌든 덕분에 한 번 웃었습니다.
이렇게 첫번째 팬텀이 방문해서 놀래켜주는, BOOED 부~드 당한 겁니다.
Booed 놀이는 행운의 편지와 결합된 팬텀 캔디 바구니 놀래켜주기 놀이라고나 할까요.
에 방문하면
You've been Booed! 라고 씌여진 귀여운 귀신과 이 놀이의 지침 사항이 적힌 종이를 출력할 수 있습니다.
이 놀이의 수행 강령을 읽어보니
이 종이를 절반 잘라 팬텀을 문 앞에 붙여라.
팬텀이 방문한 집은 다른 팬텀이 오지 않을 것이다.
하루의 시간을 줄테니,
캔디 백 두 개와 이 종이 두 장을 만들어서
어둠이 내릴 무렵 남의 집 앞에 놓고 초인종을 누르고 얼른 몸을 숨겨서 들키지 않도록 해라.
그리고 Happy Halloween!
그래서 우리는 어느집에 해야되지를 고민하니 참 막막합니다.
작년에는 받고 말았거든요. 올해도 그럴까 싶기도 하고,
걸어서 갈 수 있는 집은 옆에 두 집인데 아마도 그 집들은 벌써 팬텀이 방문했을거고
다른 집이라면 앞집이나 아이 친구 집에 차를 가지고 가서, 얼른 내려서 캔디백을 놓고 초인종을 누르고 막 뛰어서 도망을 와야 하나,
그런데 그 상상을 하다보니 순간 쭈뼛 했습니다.
왜냐면 미국 집들은 총을 가지고 있는 집들이 많거든요.
그 용도는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자기 Property에 함부로 침입을 하면 그걸 꺼내들 수도 있잖아요.
자기집 마당에서 어둠 속에 마구 뛰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깜짝 놀랄거고, 그러면 흑, 안되는 거죠.....
친구 엄마가 자기 집에도 있다고 했던 얘기와, 자기 집에 잡상인이 방문했는데 Stay away from my property!하면서 난리였던 기억이 나서
목숨걸고 팬텀을 방문시킬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아이에게 팬텀을 색칠해주라고 하고 문 앞에 붙이는 거만 했습니다.
아침에 스쿨버스를 타러 나가니 다른 이웃 아이 T가 그럽니다.
어젯밤에 팬텀이 방문했냐고, 우리집도 왔었는데 분명 M 이라는 겁니다.
M이 자기집에 올때 항상 초인종을 세 번 누르는데, 어제 초인종이 세 번 눌리고 캔디백이 있었다는 거예요.
이 얘길 하고 있는데 아이 학교 보내려고 M 아빠가 밖으로 나왔고,
마침 있던 T 아빠가 멀리서 큰 소리로, "You booed our house yesterday!" "No, we didn't" 이러고 웃으면서 서로 놀리는 겁니다.
다 큰 아저씨들이, 체면 치레 없이, 귀신 장난을 가지고 아침 인사를 하며 노는 걸 보니 웃기더라구요.
애들보다 더 재밌어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이로부터 이틀 후,
어둠이 내린 저녁 7시가 조금 넘었을 때 또 초인종 소리가 들립니다.
올 사람이 없는데...나가보니 또 BOOED!
저쪽으로 조그만 아이가 아주 열심히 뛰어가고, 그쪽 어딘가에서 웃음소리가 막 납니다.
이웃집 조그만 T의 줄행랑치는 실루엣!
두 번이나 BOOED되고 나서 M 엄마에게 우리 두번이나 당했다고 했더니, 첫번째 꺼가 우리가 한거라고 하면서
바구니 놓고 나무 옆에 가서 숨어있었는데 현관문 열고 우리가 놀래는 걸 보고 웃겨 죽는 줄 알았답니다.
그래서 그 날 저도 쇼핑 나가서 바구니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올해의 테마는 아무래도 스타워즈이므로 (호박도 다쓰 베이더로 팠습니다.)
DARK SIDE 라고 씌여진 스타워즈 바구니에 이것 저것 쵸컬릿을 채워넣고 제일 위에 다쓰베이더 얼굴 모양의 장난감을 올려놓았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아이와 키득거리며, 숨죽이고 T네 집 앞에 바구니를 놓고 초인종을 누른 후 미친듯이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했습니다.
T네 집 아빠는 현관에 나와서 일부러 누구냐고 막 소리를 지르는데 우리는 들킬새라 뒤도 안돌아보고 달려서 집까지 왔습니다.
거리가 백미터쯤 되는 데를 전속력으로 달렸더니 어찌나 힘들던지요.
그래도 한 집을 더 가야하기 때문에 숨을 고르고 이번에는 M네집 앞에 다시 가서 바구니 놓고 또 다시 달려서 들어왔습니다.
M네는 좀 일찍 자기 때문에 M아빠가 거실에 있는 걸 봤는데, 아마 밖에서 키득거리고 있으니 일부러 늦게 나와주는 거 같았습니다.
집에 들어와서 아이와 둘이 얼마나 숨이 차던지, 근데 또 얼마나 웃기고 재밌었는지 모릅니다.
딩동~ 누르고 문을 열면 문 앞에 다쓰 베이더 캔디 바구니가 있을 걸 상상하면서 말이죠.
이 놀이는 당하는 사람보다 놓고 도망오는 재미가 크더라구요.
그리고 하루 안에 다시 하라는 것과, 한번 방문한 곳은 다시 안하는 룰을 고지식하게 지켜야하나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게다가 누가 줬는지 아는데, 받은 집에 도루 갖다 주는 것이 더 재밌고 좋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때는 행동 강령을 잘라버리고 You've been booed!라는 고스트 그림만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이로써 이번 할로윈에 우리 이웃들은 세 집 모두 두 번씩 BOOED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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