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 아침에 스쿨버스를 타러 밖에 나가면
잔디 옆 드라이브 웨이에는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지렁이'가 여기 저기 널브러져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니라 어디론가 이동을 하는 듯 하다.
잔디밭 땅 속에서 비가 온다고 좋다고 기어 나왔다가
드라이브 웨이를 다 건너지 못하고 말라 죽으려고 작정을 했나...
안쓰럽기 그지없다.
잔디 속에서 공기 구멍 좀 내주고 우리 잔디 잘 자라게 도와주며 살지
왜 모험심을 발휘해서 그 고생이더냐.
비 내린 아침마다 아이는 고개를 숙여 지렁이의 움직임을 빤히 관찰하며 엄마가 밟을까봐 "엄마 조심해!"를 연발한다.
엄마는 "스쿨 버스 온다, 빨리 와!"로 대답한다.
아이가 처음에 지렁이를 봤을 땐 본능적으로 징그럽다는 생각을 하는지 비명을 지르며 깜짝 놀랐었다.
아이들은 보통 주 양육자의 언어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나는 생각을 조작하려 시도해보았다.
"어머, 한번 봐바.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
우와, 어디로 기어 가려고 땅속에서 나왔나.
지렁이는 물을 좋아해서 비가 오면 밖으로 나오나 봐."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사랑스럽게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성공!?
그러면서 나는 지렁이를 안쳐다본다...ㅎㅎㅎ
사실 정원 일을 하면서 잡초를 뽑다가 혼자서 "으아악~" 소리를 지르며(미친ㄴ처럼) 별 난리를 다 치는 때가 있는데 바로 땅속에 있던 지렁이를 건드렸을 때이다.
벌써 몇 년째 마주쳐도 놀라버리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본능이 아닐까 싶다.
스쿨 버스를 타려고 나온 이웃집 아이에게 그 엄마가 계속 소리친다.
"지렁이 집어들고 학교에 가져가지 마!"
그 아이 언니의 설명에 의하면, 얘가 지렁이를 너무 좋아해서 컵에다 넣고 집 안에 가져 왔었단다.
지렁이가 밖으로 나온 건 아니고, 그 안에서 말라 죽어서 어떻게 하나 하다가 변기에 버린 적이 있었다나.
나는 박장대소를 하며, 너는 왜 지렁이를 집어? 라고 물으니까, 그냥 갖고 놀기 좋단다.
아, 이 귀여운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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