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친구 엄마이자 같은 길에 사는 이웃, 지금은 친구가 된 J와 함께 스키장에 다녀왔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일곱살인가 여덟살 많은 언니인데, 영어에 언니 호칭이 없어서 그런지 나이 생각은 안하고 그냥 친구네요.
한국 친구들과는 한살만 많아도 '언니'와 '동생'이 되면서 기본적인 틀을 안겨주는데 반해, 영어를 쓰는 관계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은 'Friends'라는 관계에 이름을 부르다보니 그런 틀이 없는 것을 느낍니다. 이 관계에서는 한번도 나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관계에서 언어가 주는 생각의 틀은 생각보다 큰 것 같습니다.
J는 남편이 파키스탄인이어서 다양한 문화에 대해 보다 열려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 친해지기가 쉽기도 하고요. 가까이 살다보니 틈나면 아이들 플레이데잇을 할 수 있는 것도 부담이 없습니다. 아이 친구가 놀러온다고 해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그냥 와서 한 시간 정도 놀다 가거든요. 가끔 스쿨 버스를 같이 타고 오게 하고 골드피쉬 과자나 쥬스를 줄 뿐입니다. 미국 중부 출신인 J는 보통의 미중부 사람들이 굉장히 순하다는 편견에 맞게 정말 순한 성격입니다. 이 친구가 흥분해서 얘기하는 건 트럼프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뿐이죠.
J에게 나 스키장 갈건데 같이 가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신난다고 하여 같이 나섰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이다보니 스키장은 우리를 위해 준비된 듯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J는 아이 셋 엄마인데 첫째가 대학에 갔으니 지난 이십 년, 즉 아이를 키우는 동안 스키를 탈 일이 없었던 겁니다. 이번에 아이들에게 스키레슨을 해줬더니 좋아하길래 같이 즐길까 하던 차에 저랑 같이 나섰던 거고요. 너무 오랫만에 탄다고 내내 긴장을 하길래 먼저 그 스키장에 가본 사람으로서 이것 저것 안내를 해주며 우리가 어느 코스에서 탈 수 있는지를 리드해줬죠. 매직 카펫이 있는 가장 쉬운 초급 코스에서 두번 정도 타고, 체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초급 코스에서 탔는데, 저한테 갑자기 "우리 저기 경사 높은 데 갈래?" 그러는 겁니다......
초보 레벨의 레슨을 받고 있는 저는 "그....래..."하고 같이 중급자 코스로 가서 타는데, 몸풀린 이 아줌마 날라다니더라구요.
알고보니 어렸을 때 보이 스카웃 단장이셨던 아버지와 매해 겨울 스키를 타며 자랐다고 합니다. 오랫만이라 긴장했던 것일 뿐, 실력이 상급자였던겁니다.
리프트 기다리는 시간도 없이 두 시간을 꽉 채워서 타고 집으로 오면서
트럼프 행정 명령 때문에 뉴스 쳐다보며 열받고 있었는데 밖에서 너무 좋은 시간 보냈다고 얘기하며 헤어졌습니다.
가끔 홈스쿨링 하는 아이들이 올 뿐 사람이 거의 없는 평일 오전의 스키장
멋진 뷰...
마치 나를 위한 전용 스키장처럼 깔끔하게 그루밍 해놓은 눈자국.
20분 거리의 전통있는 스키장에서 레슨 받고
40분 거리에 있는 근사한 스키장에서 놀고
눈 많이 오는 동부에 살면서 긴 겨울 춥고 눈치우느라 고생하지만
덕분에 이런 호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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