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날씨가 풀렸는데, 먹구름이 지표면까지 내려와서 한치앞도 안보이는 안개가 깔렸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시속 10마일 이하로 운전해도 바로 눈앞의 차선이 안보이는 수준이다.
퇴근할때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동네 도로를 5마일 (8km)정도 운전해야 집에 도착하는데, 이 길은 가로등도 없고 주변에 주택도 드물게 나오는, 칠흑같이 어둡고 좁고 구불구불한 숲속길이다.
끊임없이 감겨드는 안개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희미한 중앙선의 형체를 찾아가며 아주 천천히 기어가듯이 차가 진행한다. 하이빔을 켜면 좀더 잘보일까 싶어서 켜보니, 묵직한 안개가 하이빔을 환하게 반사를 해버려서 전방이 하나도 안보인다. 차라리 다 끄고 안개등만 의지하는게 더 나을거 같다.
한참을 달리다가 혹시 내가 보고있는게 중앙선이 아닌거 같다는 의혹이 들때쯤에 차를 멈추고 안개 사이를 주의깊게 한참 둘러보니, 내차는 중앙선을 넘어서 반대 차선위에 있다. 반대차선의 흰색 갓길 차선이 내 차 안개등에 반사되서 누런색으로 보인것이다. 두터운 하얀 장막을 찟고서 갑자기 반대편에서 자동차 한대가 나를 향해 달려드는 상상을 하니 엑셀 페달에 올려둔 다리에 힘이 빠져서 운전이 더 힘들어진다.
평소보다 두배쯤 달렸는데도, 지금쯤 등장해야하는 표지판이 안보인다. 혹시 길을 잘못 들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정신 나갈거 같은 하얀 커튼에 갇혀서는 올바른 생각을 할수가 없다. 지금껏 갈림길이 없었는데도, 내가 길을 잘못들었을 거 같다는 말도 안되는 상상이 확신으로 다가온다. 5년간 매일 다니던 길을 GPS를 켜고 찾아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울쯤에 안개사이로 표지판이 하나가 툭 튀어나오듯이 등장한다.
어디쯤 왔을거라는 나의 예상보다 내차는 훨씬느리게 이동하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절반쯤 왔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만난 표지판은 그에 훨씬 못미치는 위치를 알려준다.
다시 출발. 묘하게 숨쉬기 어려운 답답한 기분이 드는 안개속으로 천천히 자동차 바퀴와 좌절감이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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