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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알토 일상

해피뉴이어 in 뉴햄프셔

by 마미베이 2020. 1. 3.

 

 

도시로 이사하고 몇달이 지나

길거리에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인도가 따로 있고,

집에서 밖에 다니는 사람 소리가 들리는 북적거림에 익숙해질 무렵입니다.

렌트 집 타운 홈 밖의 정원 일은 당연히 고용된 사람들이 해서

더 이상 잡초를 보고 뽑아야겠다는 강박증도 사라졌습니다.

여름에 학교에 갔을 때 마른 땅에 커다랗게 자란 잡초 하나를 보고 뽑고 싶은 생각을 내내 하면서 지켜보았는데 반 년이 지나도록 그 잡초는 그대로 있는 것이 신기했지만, 내 손은 저걸 뽑을까 말까로 고민하며 보낸 시간.

이젠 더 이상 잡초가 아닌 아름다운 정원을 보고 "가드닝"을 생각하지 않고, 아름다움만 즐기는 자세로 바뀌었습니다.

 

4개월이 지나니 새로운 것들이 더 이상 새롭지 않습니다.

 

12월 크리스마스 방학을 이용해서

아이가 그리워하는 고향 뉴햄프셔주에 다녀왔습니다.

제 2의 고향이지만, 진짜 고향인 곳.

 

아이는 친구들과 놀고

저는 제 친구들을 만나고.

스키도 하루 타고,

눈이 많이 와서 눈 속에 갇혀 친구네가 트럭을 몰고 데리러 오기도 하고,

지나가다 친구네 집에 들러 잠깐 수다를 떨기도 하면서.

 

하루에 두 세개의 약속을 했습니다.

10시-12시 이런식으로 끝나는 시간을 정해야 다음 약속을 정할 수 있고

식사를 같이 할거면 확실하게 얘기를 하고..

그런데 눈 때문에 약속이 취소되거나 미뤄졌는데,

그곳에선 일상인 일입니다.

눈이 오면 모든 곳이 문을 닫고, 집에서 일을 하고, 학교도 닫고, 사람들은 나와서 스노우블로어로 눈을 치우고.

 

이전에 살던 집 옆집에 놀러 갔는데,

옆집에서 보이는 "우리집"이 더이상 우리집이 아니라는 것,

내 손길이 닿은 정원의 나뭇가지 하나의 결까지 기억이 나는데

그것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

꽤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집 옆에 있던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커다란 나무는 한국에서 친정 아빠가 오셨을때 아래쪽 가지가 지저분하다고 아래쪽 가지를 깔끔히 쳐주셨는데 그 생각도 나고, 약간 기울어진 나무를 바로잡겠다고 노란색 끈으로 당겨서 바닥에 박아둔 끈도 보이고, 매년 가지치기를 하고 잡초를 뽑고 멀치를 해준 일곱개의 정원도 보입니다.

특히나 하얗게 눈이 쌓인 평화스러운 집을 보며,

그 속에서 지낸 오랜 시간동안의 온갖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더 이상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쾌감도 들었다는 사실.

아이는 그 집에 대한 애정, 그리움을 억눌러 슬픔만 느꼈겠지만 말이죠.

 

친했던 친구들을 만나는데

일주일간 친정집 같은 편안한 숙식을 제공해준 친구네는

눈이 오니 렌트카 눈까지 치워주었고,

가는 곳마다 저의 취향을 잘 아는 오랜 친구들은

"디카프 커피?" 라며 알아서 권하고

제가 먹은 것들 중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것을 주거나

새해 파티를 해주거나

오래 잘 아는 사이의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환영해주었습니다.

 

지나다니는 모든 길도, 다 아는 곳.

그런데 더 이상 그곳에 살지 않는 곳.

여행이 아닌데 여행지인 곳.

그런 느낌이 고향인가봅니다.

 

이웃들의 개 소식은 언제나 들어도 재밌는데

이전 글에 이웃집 개 이야기를 길게 쓴 게 있었습니다.

2019/05/29 - [뉴햄프셔 일상] - 개판 이웃과 The Wall

 

우리가 살던 집에 새로 이사온 사람들이 큰 개를 가지고 있어서, 펜스를 한쪽만 쳤던 옆집은 전체를 둘러칠 계획을 가지고 있고,

결국 앞집의 커다란 세 마리 개는 이웃에게 달려드는 바람에, 이웃이 경찰에 전화를 해서 뒷마당에 펜스를 쳤다고 하네요.

 

아이는 프리스쿨때부터 알았던 친구들을 만나서 놀고,

매일 들르던 도서관도 둘러보았습니다.

늘 지나다니며 보던 한적한 서버브 마을인 그곳에 다시 살고 싶어했습니다.

왜 우리가 이 좋은 곳을 떠난 건지 슬프다며 눈물지었습니다.

그래, 우린 살다가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때가 있단다.

넌 그걸 좀 일찍 겪었구나.

 

하지만 그 사이 캘리포니아에도 친구가 생겨서,

다시 돌아간다면 캘리포니아 친구들이 그리울 거라며

진퇴양란에 빠졌네요.

 

일주일간의 여행이었는데

크리스마스 지나고 새해를 뉴햄프셔에서 친구들과 맞이했네요.

여행인건지 집에 다녀온건지 헷갈리고

또 다시 그것이 꿈처럼 느껴집니다.

 

다녀오고 이제는 새로운 곳에서의 삶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면

더 없이 좋은 여행이었다는 것이겠죠.

가장 좋은 건, 이젠 아이가 차에서 창밖을 보며 몰래 눈물을 닦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딸이 향수병을 잘 보냈나봅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New Hampshire mo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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